본문 바로가기
여행/미얀마

2024년 12월 미얀마 여행(5) - 만달레이

by 리치샘 2025. 1. 7.

만달레이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왕정 시절 최후의 왕조인 버마 왕조의 도읍지였다. 버마 왕조는 한때 동남아시아를 호령하던 가장 힘있는 왕조였다. 그것은 만달레이에 있는 일부 유적들이 증명한다.
대표적인 유적지는 구토도 파고다와 산다무니 파고다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여러 나라에 여러 형태로 난립해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일하여 정리한 불경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구토도 파고다에는 729개의 경전이 새겨진 대리석 경전 비석이 있고, 산다무니 파고다에는 1700여 개가 있다.

산다무니 파고다에서 만난 학생들과 깜짝 포토타임


불교가 인도와 스리랑카를 거쳐 미얀마로 전해지는 과정은 불교신문에 게재된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얀마는 불교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 국가이다. 바간왕조의 뒤를 이어 잠시 분열된 왕국이 다시 버마왕조로 통일되면서 미얀마에서의 불교의 힘은 더욱 굳건해졌고 그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얀마에서 가장 큰 불교 수도원 중 하나인 마하간디욘 수도원에는 각국에서 모여든 1500명이 넘는 승려들이 심신을 단련하고 있으며, 이들이 새벽 5시와 아침 10시 등 하루 두 번 공양하는 의식은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특히 오전 10시의 공양에 많은 관광객들이 관람하러 모여든다.
  
만달레이는 버마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로 봉건시대-근대-식민지시대-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산증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험난했던 과거만큼이나 과거의 흔적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묻혀지기도 했다.
만달레이 왕궁터는 해자와 성벽을 제외하고는 수풀만이 무성한 속빈 강정이 되어 있다. 옛 궁궐을 복원했다고는 하지만 기둥만 덩그렇게 세워놓고 그 위에 양철 지붕을 씌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어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전통이 되어버린 궁궐 내 군대 주둔은 일제시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군대가 궁성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 

옛궁궐 건물은 해자 동북쪽에 있는 황금 왕궁 사원(쉐난도 수도원이라고 불리기도 함) 하나 뿐이다. 이 건물을 직접 가보면 티크 나무를 다루는 옛 버마인들의 놀라운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황금으로 덧칠되어 있었다는데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우베인 다리

만달레이에서의 당소 일정은 첫날 핀우린에서 오후에 내려와 만달레이 힐에서 일몰을 보고, 호텔 체크인, 다음날 밍군대탑과 그 옆의 신뿌메 파고다를 관람하고 사가잉에서 점심을 먹은 후 우베인 다리로 가서 석양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핀우린에서 내려오면서 본 만달레이의 모습은 연무가 잔뜩 끼어 시야가 극히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일행 중에서 관광보다는 골프 라운드 한 판 더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어 대수결 투표,
밍군대탑과 신뿌메 파고다 관광 대신 골프를 치기로 하고 만달레이 힐 대신 우회도로를 타고 우베인 다리로 향했다.

우베인 다리는 해질녘에 가야한다. 5시 이전에 도착을 해야 하는데 바쁜 마음만큼 차가 속도을 내지 못한다. 다행히 해가 넘어가지 전에 우베인다리 동쪽 시작점에 도착했다. 

타웅타만 호수 너머로 지는 해는 유난히 크고 붉다. 이어지는 석양을 우베인 다리와 함께 바라보면 환상 그 자체다. 

우베인 다리에서 본 해넘이

숨막히는 해넘이와 석양 풍경만 보면 된다. 몇 번의 경험상으로는 1.2km의 티크 다리를 다 건널 필요는 없다. 낡아 울퉁불퉁한 다리를 걷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자칫하면 발목을 삘 위험도 있다. 그저 적당한 자리에 머물면서 순식간에 변해가는 해넘이 풍경에 몰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호수 언저리에 있는 야외 식당에서 맥주나 코코넛을 시켜놓고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멍때리면서 황홀경에 빠져보기를 권장한다.

우베인 다리와 함께 보는 석양은 환상 그 자체


야다나본Yadanarbon 호텔 - 강추

만달레이 궁궐 남쪽 31번가에 있는 이 호텔 역시 일정을 변경하면서 급하게 예약한 호텔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호텔 입구에 차가 도착하자  벨보이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안내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홀은 넓었고, 안내 데스크 직원은 특유의 예쁜 미소를 인사를 건네 왔으며, 영접차도 맛났다. 
방은 더 없이 깔끔하고, 샤워룸 역시 샤워가 즐거울 정도로 좋았다. 조식 레스토랑은 꼭대기 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삼면이 트여 만달레이 시내 조망이 시원했다.


쉐사얀 골프 코스

일행 중 세 명은 이미 골프 여정은 끝난 것으로 판단하고 신발이랑 골프용품을 처분하거나 짐으로 단단히 포장한 후라 부득이 자유여행을 하기로 했다. 나머지 다섯 명은 만달레이의 가성비 좋은 골프장인 쉐사얀 골프&리조트로 향했다.

그린피는 외국인 기준 작년과 같은 20달러, 그런데 환율이 4500짯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9만 짯이다. 일행이 마지막으로 바꾼 환율이 4300짯인데 어라! 그보다 더 높이 책정해 놓은 것이다. 짯 대신 달러로 결제를 하고, 거스름돈은 달러당 4500짯으로 쳐서 받았다. 머리를 잘 쓴 편이지 않은가? ㅋㅋ
이 골프장은 올 때마다 석연치 않은 게 누구 말을 믿어야 할 지 모를 경우가 종종 있다. 카운트 직원의 말과 그늘집 주인의 말, 그리고 캐디 매니저와 캐디의 말이 제각각이다. 캐디팁의 경우 카운트에서는 15,000짯이라 해서 왠걸 무지 싸다고 내심 좋아했는데, 정작 캐디는 정색을 하면서 35,000짯을 달라고 한다. 트롤리값도 다른 골프장보다 1천짯 비싼 4천짯을 달란다. 

골프장에서 모이를 쫏고 있는 닭들. 생김새가 마치 새 같이 살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미얀마 치킨 음식은 살이 적고 뼈가 많다.


다시는 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가게 되는 건 만달레이의 여타 골프장들이 턱없이 비싸거나(
Shwe Mann Taung Golf Course), 용인해줘도 될 규정을 들이대며 고객에게 갑질하는 경향(Mandalay MCDC golf club), 아니면 너무 외떨어져 접근성이 떨어지는(Myotha National Golf Club) 등의 문제점으로 인해서다. 어쨋든 예정에 없던 골프 라운드를 한 번 더 하게 되었고, 동참하지 못한 세 명은 마하간디욘 수도원, 아마라푸라 유적지로 해서 사가잉까지 택시 투어를 한 모양이었다. 

만달레이에서 만남 불발

사실 만달레이에서도 미얀마인들을 만날 계획이 있었다. 앞서 핀우린 편에서 언급했던 아가씨 지윤(자니윈)이가 만달레이에 근무하는 줄 알고 만나보고 싶었고, 군부 쿠데타 이후 학교가 휴교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원격교육을 하고픈 교사들에게 노트북을 살 돈을 지원해준 적이 있는데 그 분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다고 해서 그들과의 만남도 예정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두 건 모두 불발이 되었다. 근본 원인은 미얀마의 현 정치상황 때문이었다. 지윤은 고향에 쉬고 있었는데 통신이 불통이라 연락을 할 수 없었고, 선생님들은 군부와 소수민족군 간의 교전 때문에 자유로운 행보가 불가능하다고 전해 왔다.
그리고 운전사 우쪼가 전해준 이야기로는 자신의 고향이 까야주인데 그곳에서도 마을이 정부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까야주는 수도 네피도와 가까워 정부군 쪽에서는 반군에 더 강력한 대응을 하는 것 같다. 

만달레이 힐

마지막날은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지 않은 산인 만달레이 힐로 갔다. 
정상에는 수 탕 패Su Taung Pyae 파고다가 있다. 이 파고다는 특이하게 벽면과 기둥이 색유리로 장식되어 있다. 사방으로 트인 파고다 주변을 돌면서 내려다보면 만달레이 왕궁과 시내, 핀우린 쪽 산 능선, 에와야디 강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수탕패 파고다에서 본 핀우린 방향.사진의 정면에 보이는 산꼭대기에 핀우린이 있다. 그러나 핀우린은 고원지대의 시작점일 뿐이다.


찻길과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데, 찻길의 경우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분리되어 있는 일방통행로이다. 내려오는 길 옆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길을 막아놓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 골프장 쪽으로 돌아서 시내 쪽으로 와야 했다.

산다무니 파고다

만달레이 궁궐 북동쪽 모서리에 있는 불교 경전을 새겨놓은 비석이 가득한 산다무니 파고다에 들렀다. 이곳은 인근의 구토도 파고다와 함께 똑같은 모양의 작은 파고다 안에 경전을 새긴 비석같이 생긴 대리석을 품고 있다. 미얀마 글자를 알지 못하는 나같은 이에겐 파고다 하나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된다. 나머지는 글자만 다를 뿐 구조가 다 똑같기 때문이다.  
관람 중에 학생들 무리가 들이 닥쳤다. 인사를 건네니 수줍은 듯 반갑게 받아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대뜸 '아파트, 아파트'를 외친다. 한 사람의 작품인 듯 볼에는 하트 모양의 다나까를 바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학생들과 깜짝 촬영. 뒤로 불경을 새긴 대리석 비석을 감싸고 있는 수많은 작은 파고다와 멀리 만달레이 힐이 보인다.



착한 미얀마 사람들에게 축복을!

만달레이 공항으로 가는 길, 앞서 가는 트럭의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사람 셋이 타고 있다(넷인가?). 리어카가 달린 오토바이에 일가족이 타고 다니고, 1톤도 안되는 작은 트럭 짐칸에 사람이 가득한 모습은 미얀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위험한 교통 수단이다. 

왜 이 나라가 이렇게 답답한 행보를 하고 있을까를 이리저리 많이 생각해 보았다.
내 나름대로의 답은 이 나라가 공식적으로 135개나 되는 민족이 한 영토를 이루고 살고 있으며, 이들 민족들은 예로부터 자기네 땅에서 자기네 삶을 살고 싶어하는 생각이 강해 이를 정치적으로 통합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 한다.
지금 미얀마는 군부 대 반 군부 즉 소수민족군으로 분열되어 있는 듯하다. 소수민족은 너무나 많다. 일부는 자체 군대까지 조직해 있다.
각 지역에 따라 특산물이 있고 그것이 경제와 연결되어 있어 소수민족 쪽에서는 버마족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군부에 양보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군부는 나라를 통합해야 한다고 외치며 그들의 주장을 묵살한다.

샨주 북부 라시오로부터 중국과의 국경지역까지는 소수민족 연합군이 정부군을 몰아내고 실권을 쥐고 있다고 한다. 샨주의 모곡이라는 지역은 엄청난 루비 광산이 있는 곳인데, 이곳도 소수민족군이 장악했다고 한다. 샨족은 샨족대로 자기들끼리 자기 땅에서 나는 생산물을 기반으로 살고 싶어하고, 까야족은 까야족끼리, 카인족은 카인족끼리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이것이 미얀마의 현재 모습이다.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중국과의 육상 무역로는 무역이 재개되었다고 하며, 소수민족군이 장악하기 직전까지 많은 지점에서 통행료 혹은 무역에 따른 세금을 내고 통과했으나 이제 한 번만 내면 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역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정부에서는 주도권을 소수민족에게 넘겨준 꼴이니 상황이 묘하긴 하다. 분명한 것은 샨주 북부의 소수민족군 지배 지역에는 중국계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착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의 가르침이 몸에 배여 있어 업보를 받아 태어난 이승의 삶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생에서 어쨋거나 공덕을 쌓아 저승에 가서는 이승보다 조금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기 수중에 들어오는 재물의 절반 이상은 절을 통해 시주를 하면서 공덕을 쌓아간다.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조금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몫이다.
미얀마는 군부가 60년 이상 정권을 쥐고 나라의 발전을 정체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얀마인들은 대한민국을 부러워한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롤모델이 되고 싶은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달레이를 방콕 돈므앙공항, 수안나폼공항에서 부산으로

미얀마를 떠나는 비행기편은 방콕의 수안니폼공항이 아니고 돈므앙공항이다. 수안나폼공항이 인천공항이라면 돈므앙은 김포공항 쯤 된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인 오후에는 비행기편이 오로지 돈므앙뿐이었다. 이곳은 처음 가보는 곳이라 적잖이 긴장했다. 수안나폼공항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몰랐고, 고작 얻은 정보는 중간 쯤 시내에 있는 큰 백화점에 짐 맡기는 곳이 있다는 정도, 그곳에 짐을 맡겨놓고 저녁을 먹고, 시간이 남으면 마사지를 받고 수안나폼공항으로 갈 계획이었다.
비행기는 오후 5시에 돈므앙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항내 이동 동선이 너무 길고, 입국 수속에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출구 쪽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6시를 넘긴 상태. 수안나폼에는 적어도 11시까지는 가야하는데 시내에서 저녁 먹고 마사지받고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공항의 안내 데스크에 물었더니 다행히 수안나폼으로 가는 셔틀 버스가 있으며, 항공예약표을 보여주면 무료로 태워준다고 했다. 4번 출구 앞에서 여권과 항공예약표를 제시하고 스티커를 발부 받아 셔틀 버스를 탔다. 1시간 소요되어 수안나폼공항에 도착했다.
3층에서 저녁을 먹고, 차 한 잔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공항의 1시간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를 이용해서 데이터 접속을 했더니 난리가 났다. 무안공항 참사로 인해 미얀마 지인에게서, 국내의 가족에게서 걱정하는 메시지가 가득 와 있었다.
참고로 1시간 무료 와이파이는 1시간이 지나면 재접속하면 또다시 이용할 수 있었다. 접속 아이디와 전화번호는 아무렇게나 입력해도 상관없었다.

항공사 창구가 열리자마자 표 끊고 짐 부치고, 좁은 비행기 안에서 긴긴 밤을 설치며 귀국했다.
김해공항의 공기는 차가웠다. 내년 겨울이면 사람도 기온도 따뜻한 미얀마로의 여행을 또 궁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