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세도 그렇지만 미얀마의 요즘 정세도 우리와는 다른 사정이지만 예사롭지 않다.
정부군에 대한 국경지역의 소수민족군의 저항이 거세다. 특히 북부의 샨주와 중동부의 까야주가 심한 것 같다. 그런 정세 때문에 당초 양곤만 방문하고 올거라고 계획했다.
그러나 네피도와 만달레이, 핀우린의 지인들이 직접 들려주는 상황 정보는 혼란이 간간이 전해주는 뉴스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큰맘먹고 양곤-네피도-핀우린-만달레이를 둘러보는 여정으로 변경했다.
출발일은 12월 16일, 방콕을 거쳐 양곤으로 들어가 12월 30일 만달레이에서 방콕을 경유해서 돌아오는 일정.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번 미얀마 여행 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같이 갔던 일행 모두는 아주 즐겁고 알찬 여행을 즐겼다.
단지 돌아오기 전날인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일어난 항공사고, 그것도 방콕 발 비행기 사고로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에게 본의 아닌 걱정을 끼쳐드렸다.
방콕
미얀마로 가는 비행기는 인천-양곤 직항편 외는 없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인천에서 비행기를 탈 것인가 아니면 가까운 공항에서 타고 중간에서 갈아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사는 창원은 김해공항이 가까이 있다.
인천까지는 기차를 타던 버스를 타던 5시간 이상 걸린다. 탑승수속 시간까지 포함하고 배차 시간까지 고려하면 족히 8시간 이상 소요된다. 이 소요시간과 경비는 지방공항을 이용하여 경유지를 거쳐 가는 것과 비교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 그래왔듯 이번에도 김해공항에서 출발해서 방콕을 거쳐 미얀마로 가는 경로를 선택했다. 소요되는 시간과 경비는 엇비슷하다. 단지 방콕에서 짐을 가지고 입출국 수속을 밟아야하는 번거러움이 있긴 하지만 지방에서 인천으로 갈 때 겪어야 하는 짐 운반 수고에 비하면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다.
방콕은 부산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는 곳이다. 하노이, 싱가폴 등 허브공항이 있긴 하지만 방콕만큼 미얀마행 비행기가 자주 없다. 그리고 부산 출발 대부분의 항공편이 저녁에 출발해서 현지 시간 밤 12시 전후에 도착하도록 되어 있어, 하루 만에 미얀마까지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저녁 7시대에 출발해서 방콕에는 현지시간 밤 12시에 도착, 입국 수속을 마치면 거의 새벽 1시가 된다. 미리 예약한 호텔의 셔틀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아래 사진 호텔 사진은 이번에 묵었던 코티지 수안나폼 호텔로, 수영장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환승하는 우리같은 손님에게는 그림의 떡, 그 편의 시설 이용료가 포함된 호텔비가 아깝다는 생각이다. 하룻밤 묵을 거면 이런 부대시설이 번지르한 호텔을 필요치 않다. 게다가 공항 셔틀 차량비는 별도로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항 주변 호텔이 이런 시설이라 그중 가성비가 괜찮아서 선택했다.
이 호텔에서 잠만 자고 아침밥은 호텔 조식으로 해결, 다시 셔틀 버스를 이용해서 수안나폼 공항으로 이동했다.
양곤
오전 10시 무렵에 뜨는 양곤행 MAI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콕과 양곤 사이는 제주도 가는 것 만큼 가깝다.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게다가 태국과 미얀마는 시차가 30분 있다. 미얀마가 느리다. 현지 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1시간도 안 걸리는 것이다.
공항에는 친절하게도 나를 엉클Uncle이라 부르는 미얀마인 쪼묘왕이 렌트한 차와 함께 마중을 나와 있었다.
쪼묘왕과의 인연은 10년이 넘은 것 같다. 그는 미얀마 농업연구소 연구원이고, 그의 아내는 중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다. 나의 지인이 농업기술 전수를 위한 해외파견단인 코피아(KOPIA)의 미얀마 팀장으로 근무를 할 때 알게된 젊은이다. 그의 나이는 내 큰 아들과 동갑, 학구파로 작년 우리나라의 공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차는 네피도에서 렌트를 했고, 운전사는 양곤 지리가 익숙치 못해 양곤 사람 나인나인에게 도움을 청해 양곤에 있는 동안 나인나인이 운전을 하고 차주인 우쪼는 조수석에 앉았다.
호텔 체크인 시간이 되질 않아 짐만 맡겨두고 시내 미얀마플라자에 들렀다.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더위도 피할 심산이었다. 미얀마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쪼묘왕의 도움을 받아 환전도 했다.
미얀마 짯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평가 절하되고 있다. 몇 년 전 한화와 거의 1대 1이었던 환율은 지금은 거의 원화 대 짯이 1대 3 정도가 되었다. 원화 역시 최근의 사태로 인해 가파르게 절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미얀마만큼은 아닌 게 디행이랄까? 달러 환율은 공식적으로는 1달러 3500짯이지만, 사설 환전상에서는 4300짯 언저리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미얀마는 예나 지금이나 달러가 궁한 나라다. 그리고 달러 지폐의 훼손도에 따라 환율이 달라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 즉 빳빳한 신권에 비해 접히거나 탄력이 떨어지는 돈은 환율이 내려간다. 100달러 짜리가 제대로 대접을 받고, 50달러, 20달러, 10달러 짜리 등 액면가가 내려가면 환율도 내려간다. 돈을 돈으로 보지 않고 수집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차 이야기를 잠깐해보자. 이전까지 열 차례 정도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는 쪼묘왕의 처남인 묘띠하의 차를 이용했다. 묘띠하의 차는 이번에 이용했던 토요타 하이에이스의 짝퉁 중국산으로 메이커는 포툰이었다. 그런데 이 차가 너무 불편했다. 승차감은 거의 트럭 수준이고, 좌석 밑으로 짐을 싣기 위해 높이를 높이는 바람에 달리가 들릴 정도로 좌고가 높았으며, 차창이 눈 아래로 쳐져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2023년 12월에서 2024년 1월에 걸쳐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는 거의 폐차 수준까지 갈 정도로 기계장치들이 노후화되어 있었다. 실제로 고속도로 주행 중 멈춘 적도 있었고, 미션 기어가 부러져 하루 이상 이용을 못한 적도 있었다(물론 대체 차량을 이용하긴 했지만).
그런 경험으로 인해 이번에는 믿음이 가는 차종 토요타 하이에이스를 지목했다. 스타렉스, 스타리아 등 국산 승합차도 있긴 하지만 귀하다.
미얀마의 차들은 대부분 인근 태국에서 생산되어 운행되다 수입된 중고차들이다. 양곤의 버스들은 현대차가 아직까지 압도적으로 많지만 낡기는 매한가지. 태국산 일본 메이커이다 보니 핸들이 우리와는 반대로 앞에서 봤을 때 차량의 왼쪽에 붙어 있다. 차량통행은 우측이다. 그래서 차를 타고 내릴 때 길 가운데 방향으로 해야 하므로 매우 위험하다. 이 차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앞문이 조수석이고, 슬라이딩 도어 역시 이쪽 방향에 붙어 있다.
승차감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이 차도 믿음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미얀마플라자는 대형 쇼핑몰로 인야 호수와 인접해 있다.
점심을 먹고 산책 겸 인야 호수 쪽으로 가봤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길가 콘크리트 구조물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자전거를 몰고 지나가던 분이 자기가 찍어주겠단다.
덕분에 일행 모두를 한 장면에 담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분은 본색을 드러냈는데, 바로 아이스크림 장수였다. 당연히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밖에.
인야호수는 양곤의 호수 중 가장 큰 호수로 주변에 대형 빌딩들과 고급 호텔 및 레스토랑들이 밀집해 있다.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놀이공원과 호수를 향해 샷을 날리는 플로팅 드라이빙 레인지(골프연습장)도 있다. 호수 건너편에는 우리 자본으로 지어진 롯데호텔도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플로팅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을 해봤다. 아이언 하나를 빌리고 공을 한 박스 사서 번갈아가면서 몇 개씩 샷을 해봤다. 호수를 향해 쏜다는 신기함과 생소함은 몇 개 치지 않아 사라져버리고 공의 구질, 스윙폼에 더 신경이 쓰였다.
석양을 뒤로 하며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호텔은 아레카(Areca). 깔끔하고 서비스도 좋은 가성비 호텔이었다. 골프장과 시내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양곤에 있는 동안 줄곧 아지트가 되었다.
여행의 주목적인 골프 투어는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른다.
국내 언론을 통한 뉴스만으로는 미얀마의 정세가 거의 전쟁 상태인 걸로 인식된다. 하지만 미얀마 현지 소식통과 현지인의 전언, 미얀마에 거주하는 있는 유투버들이 전하는 정보 등을 종합해보면, 군부 쿠데타 5년차를 맞고 있는 현재의 미얀마 정세는 대도시 즉 양곤과 만달레이, 네피도 등은 비교적 안정이 되어 있고, 국경 지역은 소수민족이 세를 확대하거나 교전 중인 상황으로 파악된다. 특히 샨주 북부와 까야, 까인주 쪽의 분쟁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곤에 거주하면서 유튜버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분이 몇 분이 있는데, 그 중에 최근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채널이 '마이티비 미얀마'이다. 이 채널의 운영자는 출국전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드렸더니 친절하게도 카톡 음성전화를 주었다. 양곤에 오면 여러 가지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운영자와 이 채널에 고정 출연을 하고 있는 킨양이 바쁜 가운데도 우리의 저녁 초대에 응해주었다. 우리 일행중 솔직히 미얀마 여행에 대해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없지 않았는데,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의 영상을 제공해준 덕분에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한 조그만 화장품 선물 그리고 저녁 한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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