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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7080의 동네 - 경화동

by 리치샘 2021. 7. 9.

"우리는 손녀가 시집 가는 걸 볼 수 있을까?"

아내가 느닷없이 던질 질문이다. 나는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하나 뿐인 손녀는 세 살이다. 나는 "30년은 더 살아야겠네."라고 말을 이어받았지만 그때는 나와 아내가 90을 넘겨야 한다. 왠지 버거운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저 인생이라는 것이 뭔가?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그 자식 키우고, 가르쳐 독립하도록 하고... 자신의 내적 외적 풍요도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남는 건 뭐지?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복잡하게 오갔지만 늘 그렇듯이 막막한 느낌과 가늘고 긴 한숨만이 남는다.

무릎이 아파 끙끙대던 아내가 장맛비가 잠시 그치자 기력을 회복한다. 걷기를 하잖다. '걸음아, 날 살려라'라는 심정으로 부지런히 걷고 있다.
오늘은 거실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때는 신도시로 진해를 대표했던 경화동 옛 주택가로 해서 진해루까지 가보기로 한다. 손녀 시집 가는 날 헤아려본 것도 골목길을 걸으면서다.

경화동은 진해의 다른 동네와 마찬가지로 반듯반듯하게 구획정리가 된 땅 위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예전의 경화동은 경화역 아래 쪽으로 해서 바다 쪽 지역으로, 단층 혹은 2층 짜리 단독 주택들과 드문드문 섞여 있는 연립주택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던 동네임이 분명하다. 이곳에 있었다는 '불종'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불종은 불이 나거나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울렸던 종이라고 한다. 마산에 불종거리가 있듯, 이곳도 불종거리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경화동 불종

 
아파트 후문 쪽으로 들나들다 보면 비디오 대여 가게 간판이 있다. 물론 간판 뿐이다. 폐업한 지 꽤 되었을 텐데 간판은 그대로 달고 있다. 그걸 볼 때마다 추억이 소환 되어서 사진이라도 찍어두어야지 했는데, 오늘은 비디오 가게 뿐만이 아니다. 추억 소환 거리가 다양해서 다시 탐방을 해서 제대로 사진으로 담아야겠다.


이 집은 마산과 창원을 통학하던 학생들을 실어나르던 소위 대절차량 업소로 보인다. 학생 통학 일이 주된 일이었고, 회사 출퇴근, 학원, 유치원, 어린이집 아이들도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했던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출입구 옆에 붙에 낮은 창인데 짐작컨대 예전의 버스 매표소처럼 표를 팔던 창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학생들, 특히 고등학생들은 0교시 수업으로 시작해서 야간 자율학습으로 끝을 맺는, 하루 평균 18시간 정도를 머물던 곳이었다. 그런 학생들을 일반 버스는 등하교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학생들은 봉고로 대변되던 미니 버스로 등학교를 했었다. 그럴 때 성업했던 가게였던 것 같다. 상호도 서양에서는 감히 서민들은 로비에도 들어서기 어려운 호텔 이름 힐튼이다. 자가용이 일반화되면서 사양 사업이 되었을 테니 햇수로 따지면 20~30년 전에 성업하고 그 후에 쇠락하지 않았나 싶다. 010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는 쇠락에 대항한 흔적인 것 같아 안타깝다.


경화동 끝자락에는 행암으로 연결되는 철길이 있다. 예전에 진해화학이나 동방유량과 같은 큰 회사가 행암 쪽에 있을 때는 제법 활용도가 높았을 철길인데 지금은 행암 군부대 부두로 화물 열차가 아주 가끔 오간다. 철길 한쪽 방향으로 좁은 도로가 나란히 나 있고 철길을 가로지르는 통행로가 한 백 미터 간격으로 있다. 희한한 건 철길을 따라 양쪽으로 가게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이 할매 보신탕집도 철길 옆에 있다. 현재는 내부는 텅 비어 있고 간판은 옛 간판 그대로 걸려 있다. 1998년 8월에 유선전화의 국번호가 전국적으로 세 자리로 바뀌었으니 이 집도 적어도 20년 전 쯤에 간판을 고치거나 새로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 집은 지금도 성업 중인데, 철길을 건너야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 출입문이 아래의 수선집과 마찬가지로 북쪽으로 나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용하는 손님들이 대부분 철길 건너의 경화동 사람들이어서 그랬던 듯하다.


'양장 수선'이란 단어와 글씨체가 지워져가는 빨간 글자처럼 세월을 흔적을 말해준다. 


철길 쪽에서 본 경화동 주택가. 지금은 집들이 대부분 많이 낡았다. 타일이 떨어지고 벽돌이 삐져 나오는 등 수리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 보인다. 슬라브 지붕집이 대부분이다 보니 가장 많은 문제가 누수인 것 같다. 그것은 이 곳의 상점 중에 집 수리 가게가 의외로 눈에 많이 띄었기 때문에 유추 가능하다. 

경화동은 추억을 먹고 살고 있는 동네가 되었다. 

집에 와서 유튜브에서 인문학자 김경집의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다. 그는 '나이 듦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경화동은 나이 들어 즐거운 동네가 아니라 추억을 먹고 사는,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이 동네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뜨고 나면 가게들처럼 잊혀지거나 버림받는 동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아내는 드라마 촬영하기에 좋은 동네 같다고 했다. 한때 인기가 있었던 '응답하라' 시리즈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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