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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손글씨 쓰기에 대한 소견

by 리치샘 2021. 6. 16.

하루에 한 쪽씩 글씨를 써 버릇하자는 결심이 진해지고 있다.

오늘 천원가게에 갔더니 이천 원짜리 만년필이 있었다. 잉크 카트리지 네 개를 포함한 가격이 이천 원이다. 대박이다! 만년필 가격이 이렇게 쌀 수가 있나 싶어 다른 몇 종류도 유심히 봤는데 다들 엇비슷했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주로 깎아 쓰는 나무 연필로 글씨를 쓰다가, 중학교 들면서 철촉으로 된 펜을 잉크를 묻혀서 쓰기 시작했는데, 잉크를 엎지르는 일이 다반사였고, 손가락에는 항상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으며, 엎질러진 잉크가 공책이랑 책에 범람해서 데칼코마니를 만드는 일이 허다했다. 해서 잉크 수해 염려가 적은 만년필을 갖는 것이 간절했다.

 

그러나 당시는 철을 가공하는 기술이 모자랐던지 촉이 쉽게 갈라지거나 끝이 부러져서 공책을 생채기 내거나, 글씨가 매끄럽게 쓰여지지 않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촉이 단단하고 잉크가 세지 않는 고급 만년필이 갖고싶은 물건 목록에서 늘 맴돌았다. 1960~70년대 국산 공산품은 대체로 품질이 조악해서 만년필도 제대로 된 물건이 없었다. 파카니 파일롯트니 하는 외국산이 있었는데 가격이 만만찮아 나와 같은 소농 집안 아이에게는 갖기 힘든 물건이었다. 다만 나는 언제 저 만년필을 가지고 마음껏 글씨를 써보나 하는 한탄과 꿈을 동시에 품어야만 했다.

 

그 문제는 볼펜이라는 물건이 나오면서 꿩 대신 닭의 국면이 되었지만 마뭏든 참 오랜 세월 동안 필기구와 관련한 심리전을 겪었다.

 

볼펜이 일반화되면서 선생님들은 걱정했다. 볼펜으로는 글씨솜씨가 늘지 않는다는. 그러나 곧이어 타자기가 나오고, 그것도 전동 방식을 거쳐서 컴퓨터로 순식간에 넘어가게 되었다.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두드려 찍어내게 되어버린 것이다. 만년필이 간절했던 내 손은 마우스와 자판과 더 친해졌다. 그런 시간이 벌써 이십여 년이다. 컴퓨터에 매달려 글씨를 찍어내는 동안 나의 손글씨는 날로 무디어져 갔다.

 

아예 손글씨 경험이 거의 없는 요즘 세대 아이들의 글씨를 보면, 한마디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리고 있다. 따라서 개성도 보이지 않는다. 글씨를 통해 성격까지 가늠이 되었던 과거의 이력으로 요즘 아이들의 글씨를 보면 됨됨이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다 똑같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손을 정교하게 쓸 일이 없어지니 손끝에서 머리로 전달되는 그 섬세하고도 치열한 기운을 다듬을 방법이 기회가 부족해진다는 문제다.

 

손글씨를 쓰면 집중력이 필요하고, 생각이 필요하며, 기억력이 필요하다. 손글씨를 대체할 수 있는 행위가 따로 있을까? 그것도 간단한 펜이란 도구 하나만 있으면 되는. 이리저리 헤아려봐도 손글씨만큼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손글씨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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