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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미얀마

2017 미얀마 기행 #17 만달레이(4) 만달레이 왕궁

by 리치샘 2017. 1. 25.

버마 왕조의 마지막 왕궁이 만달레이에 있다.

만달레이는 바간 왕조가 몽골에 의해 멸망한 후 샨족들이 세운 꼰바웅 왕조의 수도이다예전에 부처가 만달레이 힐을 방문해서 2,500년 후에 여기에 수도가 생길 것이라는 예언했다고 한다

만달레이 궁궐 입구. 영국식 대포가 놓여있다.

 

꼰바웅 왕조는 버마의 마지막 왕조이자 버마 역사상 두 번째로 거대한 왕국을 이루었다.
타웅고 왕조는 몬족의 반란으로 인해 미얀마 남부 바고에서 중부 잉와로 수도를 이전했으나 당시 버마 족장이었던 알라웅파아 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바고를 거쳐 남부 미얀마까지 영토를 넓혔다. 태국의 아유타야 지방까지 진격했던 왕은 도중에 암살당하고 그의 아들 신뷰신(Hshinbyushin)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알라웅파야의 또 다른 아들인 보도파야(Bodawpaya)왕은 인도와 접해 있는 아라칸 지방과 마니푸르 지방을, 그의 손자인 바지도(Bagyidaw)왕은 인도의 아삼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잉와로 옮겨졌다가 타라와디(Tharawaddy)왕 이후 민돈 왕이 만달레이로 천도하는 1853년까지는 아마라푸라가 수도의 역할을 하게 된다
. 

 

만달레이 왕궁 복원도

 

아마라푸라는 원래 세 겹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12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하나, 버마 역사 속 꼰바웅 왕조의 대부분의 수도가 그랬듯이 만달레이로 수도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성벽의 벽돌과 왕궁 건물을 허물어 만달레이로 옮겼다고 한다. 버마 왕조 특히 꼰바웅 왕조는 왕이 바뀌면 도읍을 옮기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미얀마의 왕조 명칭은 도읍지 이름을 따서 붙인다. 바간 왕조, 따웅우 왕조 등이 그 예이다. 

인도를 점령한 영국은 버마로 넘어와 양곤을 시작으로 점차 지배 영역을 확대하였다. 꼰바웅 왕조의 마지막 왕 띠보(Thibaw)의 아버지인 민돈 왕은 영국에 대항하여 새롭게 국가를 정비하고자 하였다. 그 일환으로 아마라푸라에서 만달레이로 수도를 이전하고 만달레이 궁전을 건설하였으나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1878년 사망하였다. 그 아들 중 하나인 띠보 왕은 민돈 왕의 왕비인 신뷰마신 여왕의 세 딸과 결혼할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띠보 왕보다는 신뷰마신 여왕과 그 두 번째 딸 수파알랏 왕비가 더 강한 권세를 발휘하였다. 수파알랏 왕비는 띠보 왕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80명 이상의 왕족을 학살한 것으로 유명하다.

민돈 왕과 그의 왕비

 

앞서 언급한 보도파야 왕은 1790년 높이 150미터 세계 최대의 벽돌탑 축조를 계획하고 밍군탑을 무리하게 짓게 되는데 이 때 동원된 1,000여명의 노예들이 인도의 아쌈 지역으로 도망을 가자 이를 추격하여 인도 국경을 넘어가게 된다. 호시탐탐 버마를 노리고 있던 당시 인도 식민지 통치국인 영국은 이를 빌미로 버마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영국은 결국 마지막 왕인 띠보 왕 때 세 번째 버마
-영국 전쟁을 일으켜 만달레이 왕궁을 둘러싸고 항복을 요구하였다. 띠보 왕과 그 가족이 영국군이 제공한 증기선에 몸을 싣고 인도로 떠나면서 꼰바웅 왕조도 그 막을 내리게 된다. 1885년의 일이다. 이후 1948년에 이르기까지 버마는 60년이 넘는 긴 식민지 피지배 생활을 하게 된다.


띠보 왕과 그의 왕비

 

만달레이 왕궁은 민돈 왕에 의해 1857년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54년 만에 아마라푸라에서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왕궁은 한 변의 길이가 2km인 정방형이며 성벽의 높이는 8m, 두께는 무려 3m. 성벽 밖으로 70m, 깊이 3m인 해자를 만들어 다시 성벽을 둘러쌌다.

1885년 영국은 제3차 버마-영국 전쟁을 일으켜 왕궁을 점령하고 띠보 왕을 추방한다. 그리고 왕궁은 주지사 관저와 영국인 클럽으로 이용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1942년 일본군에게 점령당해 왕궁을 군사보급창으로 사용되다가 2차대전 말기인 1945320일 퇴각하던 일본군이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결과적으로 민돈 왕에서 띠보 왕까지 왕이 왕궁에서 보낸 세월은 24, 그 뒤 60여년 적의 손에 넘어갔던 궁궐은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방치되어 있던 왕궁을 미얀마 정부가 주권 회복의 상징으로 1990년부터 복구하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원래는 114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64개만 복구되어 있는 상태이며, 큰 특징 없이 넓은 홀 형태로만 되어 있어 썰렁하고, 지붕도 함석으로 덮고 페인트칠을 한 조잡한 형태이다.

360도 파노라마 사진 보기

 

유일한 볼거리는 33미터 높이의 나선형으로 된 전망대. 이곳에 오르면 왕궁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다. 결혼사진 촬영 장소로 종종 이용된다.

만달레이 왕궁 전망대

 

전망대에서 찍은 360도 파노라마 사진

 

궁궐 내부



 

동서남북에 문이 있지만 외국인 관광객은 동문으로만 출입할 수 있다. 왕궁의 대부분은 군사 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외국인은 이름, 국적, 여권 번호를 적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 만달레이 지역 입장료 : 1만 짯(만달레이, 잉와, 아마라푸라 지역- 왕궁, 쉐난도 수도원 입구, 잉와에서 구입 가능.
○ 
개관 08:00~17:00(16:30까지 입장 가능)

 

[버마의 마지막 왕 띠보 이야기]

꼰바웅 왕조는 11대 띠보 왕을 마지막으로 왕조시대를 마감한다. 그는 1878년부터 7년간 재위하였으며 1885년 제3차 버마-영국 전쟁에서 패배한 후 인도로 유배를 당한다. 10대 왕인 민돈은 후계자인 동생 카나웅이 암살당해 후계자를 지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만달레이 궁전 북쪽에 있는 산디마니 파야는 민돈 왕이 동생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러자 민돈 왕의 아내인 신뷰마신 왕비는 띠보를 후계자로 지모하여 자신의 딸인 수파야랏 (Supayalat)과 결혼시킨다. 띠보는 아웅쉐 공주의 아들이었으나 민돈 왕에게 밉보여 궁궐에서 쫓겨나 어린 시절부터 사원에서 생활했다. 신뷰마신은 띠보를 왕으로 즉위시키면서 왕자들과 일가 친척 80여 명을 살해할 정도로 권력욕이 강했다. , 띠보는 아무런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왕으로 지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띠보는 다른 왕들과 달리 결혼 후에도 다른 왕비를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신뷰마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띠보가 스무 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을 때 이미 버마-영국 전쟁이 두 차례나 치러진 후였고, 버마 남부지방은 이미 영국의 손에 넘어간 상태, 띠보 왕은 영국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프랑스와 가까이 하며 옛 왕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영국은 버마 왕실이 독점하고 있던 루비 광산과 티크 림을 차지하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85년 영국 회사인 봄베이버마 무역회사가 티크목을 수출하는 양을 줄여서 보고하자 버마 왕실은 이 회사에 벌금을 부과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영국은 이를 꼬투리 삼아 제3차 버마-영국 전쟁을 선포, 2주 만에 버마를 접수한다. 가까이 지내던 프랑스는 국내 상황에 신경 쓰느라 공격당하는 버마를 지켜보기만 했다.

영국에 의해 폐위된 띠보 왕과 가족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레에 태워져 인도 마하라스트라 주의 라트나기리 라는 곳으로 쫓겨가게 된다. 그리고 영국은 188611일 합병을 선언하고 버마를 자신들의 식민지인 인도의 한 주(State)로 편입시켜 버린다. 이렇게 해서 버마의 군주제는 끝나고 기나긴 식민지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한편 띠보 왕은 버마 땅이 보이지 않는 인도의 서쪽 해안가에서 30년을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왕이 유배 생활을 한 지 25년이 지난 1910년에 영국은 뭄바이와 고아의 중간에 있는 꽁깐(Kongkan) 해안 지역의 언덕에 붉은 3층의 석조 건물 한 채를 지어주었다. 이곳에서 띠보는 1916년 세상을 떠났다. 띠보가 세상을 떠나자 수파라얏 왕비는 버마 몰레먀인으로 돌아왔다. 인도인과 결혼한 딸의 후손들은 평범한 모습으로 아직까지 인도에 살고 있다고 한다.

 

띠보 왕이 유배 시절 살았던 저택은 띠보 팰리스(Thibaw Palace)라는 이름으로 인도에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의 유해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인도에 있다. 한편 인도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바하두르 샤의 무덤은 미얀마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인근에 있다. 두 나라의 마지막 왕의 무덤은 기구하게도 서로 상대방의 나라에 갈려 있다.
<프렌즈 미얀마(버마), 조현숙 지음, 중앙Book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