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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열매 - 관심과 애정의 결과

by 리치샘 2025. 7. 20.

아버지를 거치지 않고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200평 남짓한 밭.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을 하고도 3년이 다되도록 아이가 없다가 내가 뚝딱 태어나니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기쁜 마음으로 공동 기금을 마련하셔서 구입한 밭, 그것을 아예 내 이름으로 등기를 하셨다고 한다. 첫 손주가 더구나 손자였으니 할아버지 두 분은 나에게 큰 기쁨과 기대를 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몸이 성치 않으실 때부터 내게는 숙제같은 땅이었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나 막상 하려면 난감하기도 하고 썩 내키지도 않는 그런 숙제같은 땅이었다. 맨 처음 시도해본 일은 체리 나무 식재, 그러나 50여 그루 심었던 체리는 지금 두 그루 남았다. 그마저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 올 가을에는 베어낼 심산이다.

농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한 가지 작물에 올인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3~4년 전부터 이 나무 저 나무 시험삼아 심어봤다. 그 중 체리와 비슷한 시기에 심은 복분자와 아로니아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어주었다. 이 두 수종은 감당이 안될 정도로 번식을 잘 해서 밭의 토양과 죽이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200 여평 전체를 두 수종으로만 채우기에는 열매 수확 후 처리가 문제가 될 것 같아 두 수종 합쳐서 100평 미만으로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나머지 빈 땅에는 사과, 복숭아, 대추, 자두, 매실, 포도, 호두 등을 두 그루 씩 심었다.
이들 모두 이 땅에 잘 적응해주기를 바랬지만 호두는 한 3년 잘 자라다가 갑자기 죽어버렸다. 그리고 복숭아와 자두는 병치레를 엄청 해댔다.
처음에는 과일 나무가 저절로 자라서 열매를 맺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제법 오랜 세월이 걸렸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복분자, 2025년 7월 20일, 올해 분 첫물
별스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번식하고 열매을 달아주는 슈퍼복분자


아로니아 역시 퇴비, 비료, 농약 등을 일절 주지 않아도 우리 가족이 필요한 만큼은 소출을 제공해준다. 원시적으로 키우다가 올해 처음으로 열매 맺은 후 열매 옆으로 나오는 새순을 전정해주었다. 십 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신경을 좀 썼다. 하지만 예년에 비해 열매가 많이 달리지는 알았다. 열매의 굵기가 예년보다 더 튼실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로니아


포도는 머루포도, 캠밸, 거봉 등 세 그루를 심었는데 머루포도만 열매를 달아주고, 나머지 둘은 영 시원찮다.

머루포도

 

아래 사진은 애기 사과이다. 솔직히 왜 이 품종을 심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작아서 좋은 점이 없는 게 과일인데 말이다. ㅋ


일반 사과는 병충해에 약해 제대로 수확해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제법 열리기고 했고, 열매로 튼실한 것같아 기대를 하고 있다.


천도복숭아 역시 병치레가 심하다. 농약 치지 않고 버티다가 한 번도 제대로 수확해본 적이 없어 올해는 농약을 이미 두 번 쳤다. 

천도 복숭아


왕대추도
속아내야할 정도로 많이 열렸다. 다음 주 쯤에는 한 번 속아낼 예정이다.


말 못하는 식물도 돌보는 농부의 정성은 아는 듯하다. 때에 따라 거름을 줘야 하고, 병이 나면 치료도 해주어야 한다. 잡초들 틈바구니에서 숨쉬기 곤란하면 풀도 베어주어야 하고, 튼실하고 좋은 열매를 위해서는 부실한 것들은 속아내 주어야 한다.
그렇듯 관심과 애정 정도에 따라 수확을 주는 것이 과수인 듯하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심은 이후 처음으로 수확한 복숭아
복숭아를 트렁크에 실어두었더니 나비가 어찌 알았는지 여남은 마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