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문 산쟁이가 아니다. 가파르게 오르거나 내리지 않는 평지형 오솔길을 쉬엄쉬엄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런 내게 여태껏 다녀본 트랙킹 코스 중 가장 좋아하는 코스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장복산 숲속 나들이길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여기서 내가 최애하는 코스를 소개한다. 이건 천기누설이다. ㅋㅋ
진해 장복산 편백 치유센터를 우선 찾는다. 지도에는 '창원 편백 치유의 숲'으로 표기되어 있을 수도 있다.
진해 쪽에서 오르다보면 치유센터가 있고, 조그만 주차장이 있다. 모퉁이를 돌아서 주차를 하자. 마진터널까지 오르는 길에 주차선이 그어져 있다. 주차하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바로 편백 치유의 숲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찾는 곳으로 편상이며 벤치, 눕는 의자 등 다양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편백 숲 사이로 수많은 지그재그 길들이 나 있는데, 아무 길이나 왔다갔다 한 두 번 하다보면 지붕이 덮힌 조그만 다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다리를 건너가도 되고, 다리 못미쳐 산쪽 데크와 쉼터를 보고 곧장 올라도 된다. 어쨋든 진해가 자랑하는 트랙킹 코스 '드림로드'를 만나게 되어 있다.
드림로드는 산불 방제와 살림 자원 관리를 위해 만든 임도이다. 경사가 있는 곳은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코스가 흙바닥 아니면 고운 자갈길이어서 걷기에는 그만이다. 거기다가 길 양쪽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철마다 자태를 뽐내는 수종들이어서 고운 꿈속을 걷는 기분이다.
드림로드 기점과 삼밀사의 중간 쯤에 숲속나들이길 이정표가 있다(아래 그림 1번 표시 장소). 여기서부터가 내가 가장 아끼는 길이 시작된다.
길로 들어서면 또 편백 숲이다. 사실 이곳은 예전에 큰 산불이 일어나 나무들이 죄다 소실되고 난 뒤 조림 사업을 한 곳이다. 장복산에 조림한 수종 대부분이 편백나무였다. 30여년 지난 지금 명품 숲이 된 것이다.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 밑으로 잠복하다 잠시 고이는 곳에 누군가 호스를 연결해서 오가는 이의 땀을 씻게 해주고 있다.
그 마음을 헤아리며 물을 맞으면 여름에는 훨씬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것이다.
숲은 찾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찌든 번뇌를 깔끔하게 녹여서 씻어준다. 곧디 곧은 편백나무는 꼬질꼬질한 마음을 다림질해준다.
간간이 섞여있는 소나무나 참나무들은 그 구불구불한 본성을 잃어버리고 편백의 심성을 닮아 허리를 곧추펴고 있다.
너무 자신을 내세우는 데 힘을 쏟은 나무는 이렇게 허리가 댕강 잘렸다. 아마도 하늘의 미움을 받았던 모양이다. 벼락의 흔적이 둥지에 시끄멓게 남아 있다.
이 느티나무는 이 산자락의 수호신인 모양이다. 이 근처에서 가장 크고 굵고 오래 된 녀석으로 보인다. 아내는 이 나무를 지날 때마다 인사를 한다. 가끔은 안아주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안기는 모양새다.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비라도 내리면 개울이 되는 곳에 나뭇가지 몇을 놓아 다리를 만들었다. 가짓수도 대략 보아 예닐곱 개 쯤되어 보이고, 건너는데 걸음수도 그 만큼이라, 나는 이 다리의 이름을 예닐곱 출렁다리라고 지어주었다.
예닐곱 출렁다리를 건너면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나는 주로 '다스림길'로 들어선다. 장복산 능선을 타고 산행을 계속하는 사람은 두드림길로 가면 된다. 두드림길로 가면 금방 마진터널 위에 올라앉게 된다.
마진터널 머리 위에서 50여 미터 못미친 지점에 바람의 골짜기가 있다. 추운 날을 제외하고는 이 지점까지 오르면 약간의 땀방울이 맺히게 되는데 여기서 그 땀방울을 바람으로 깡그리 씻을 수 있다. 날씨가 약간 쌀쌀한 날에는 여기를 빨리 지나가야 함을 뺨이 재빨리 일러준다.
바람맞이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식적인 벤치와 비공식적인 벤치들이 무척 많이 마련되어 있다.
두드림길은 이정표를 지나자 마자 약간의 시련을 준다. 오르막이 이 코스 중 가장 가파르다. 그러나 길지는 않다. 숨을 헐떡일 즈음에 벤치가 있어서 다소 버겁게 올라도 된다.
이 코스는 일흔 넘은 노인 머리숱만큼이나 성긴 편백나무 잎사귀, 그 잎이 만드는 한 뼘 그늘을 피해가기 어렵다. 숲이 하도 빽빽하니 일 주일 전에 내린 소나기 흔적이 아직도 땅바닥에 남아 있다.
앞서 나들이길 들어서자마자 만난 물길을 여기서 다시 만난다. 갈 지(支)로 올라와서다. 높이 차이는 크지 않은데 물의 양은 현저히 적다.
등산을 즐기는 외지인이 장복산을 오르는 길은 대부분 삼밀사를 거쳐 곧장 정상 쪽으로 나있는 코스다. 그러나 이 코스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오르는 길은 거의 자기 발만 쳐다봐야 할 지경이고, 내려오는 길은 미끄러지지 않고 내려오면 재수좋다 할 정도다. 거기다가 이 이정표에도 있듯이 멧돼지까지 나온단다.
나도 예전에 이 코스를 한 번 탓다가 다시는 도전을 하지 않기로 맹세했던 터라 이 길에 대해 아무런 미련이 없다.
편백 숲을 거니는 것이 목적이라면 여기에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되고, 편백 숲에 질린 이들은 여기서 하산하면 365계단 만에 드림로드를 만난다.
나의 머리카락도 염색을 그만 둔지 서너 달이 지나니 앞머리는 완전 백, 뒷머리는 반백이 되어 버렸다. 나의 나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런지를 생각하면 염색을 다시 할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을 감추는 게 이 나이에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해서 쓰고 다니던 모자마저 벗어버렸다.
나보다 더 흰 머리카락에 숱마저 거의 없는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분명 나보다는 어르신인 분을 이 코스에서 매일 만난다. 이 분은 반환점 근처 계곡에 있는 벤치에서 책읽기를 즐기신다. 최근에는 무슨 연유인지 책 대신 휴대폰을 열심히 보고 계신다.
오늘은 우리가 먼저 벤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후다닥 지나쳐 조금 위쪽 바위에 가서 앉으신다. 우리 갈터이니 여기 벤치와서 쉬시라고 했더니 더 쉬고 가라면서 당신은 바위가 편하시단다. 그분에게서 삶의 여유를 듬뿍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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