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는 없는 종족부
미얀마 정부에는 우리나라에는 없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정부 부서가 있다. 그것은 종족부(Department of Ethnic)이다. 그것은 미얀마 국경 안에 공식적으로 135개 종족이 살고 있고, 한 종족이 타 종족과 결혼하면서 새로운 종족이 파생되고 있다. 이 복잡한 종족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자고 만든 부서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종족이 많고 복잡한 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 군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성과 복합성으로 엮여있다.
미얀마 종족의 다양성
우선 종족 문제를 살펴보자.
종족의 기원으로 크게 분류해보면 티벳-버마 족, 타이 족, 몬-크메르 족, 기타 종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가진 종족이 버마 족으로 약 68%라고 한다. 미얀마 영토의 가운데 부분을 차지하고 살고 있다. 대다수인 버마 족의 종족 이름을 따서 1989년까지는 버마라는 국호를 가지고 있었다. 군부가 버마 족의 나라라는 의미를 희석시키고자 미얀마로 국호를 바꾸었다.
미얀마에는 주와 구가 있는데, 종족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들이 많다. 카친, 샨, 까야, 카인, 몬, 친, 라카인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모두 주(State)로 불린다. 버마족이 주로 사는 만달레이, 마궤, 바고, 양곤, 에와야디, 따닌따리 등은 구(District)라고 칭해 구분한다.
이렇게 다양한 종족들은 옷차림이나 가옥 구조, 생업 방식 등에서 차별화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교통 인프라의 낙후로 인해 산간 지방에 살고 있는 종족들은 아직도 원시적 생활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와 접해 있는 미얀마 도시 타칠렉은 가장 가까운 미얀마의 도시로 연결되는 여행자를 위한 육로 교통 수단이 없어 오직 비행기로만 이동할 수 있다. 샨주의 인레 호수 주변에는 5일장이 서는데 이때 산간에 사는 소수민족은 산에서 나는 식료품이나 목재 따위를 꼬박 하루를 걸어서 시장에 와서 인레 호수에 살고 있는 인따족 등의 수산물과 거래를 해간다. 이렇듯 한반도의 3.5배에 달하는 큰 국토에 6천만 명이 사는 미얀마는 민족간 교류도 그리 활발한 편이 못된다.
식민 지배 반감과 종족의 복잡성에 희생되고 있는 요힝쟈 족
이들 종족들을 아우러는 정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특히 주는 주 정부에 주 군대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독립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라카인(미얀마식 발음은 아카인) 주이다. 라카인 주에는 라카인 족과 아라칸 족이 대부분이고, 소수 민족으로 로힝야(미얀마식 발음은 요힝쟈) 족이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로힝야 족은 종교가 다르다. 미얀마인의 절대다수인 90% 가량은 독실한 불교 신도들이다. 그러나 로힝야 족은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노동력을 수입한다는 핑계로 영국인들이 방글라데시 지방에서 이주시킨 사람들로, 이들은 이슬람교도들이다. 이들 이교도들을 불교 국가 안에 심어두고 그들을 배후에서 지원하여 미얀마인들의 토지와 재산을 빼앗아 급기야는 원래 땅 주인이었던 아라칸족이 소작인으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해서 로힝야 족과 미얀마 특히 아라칸 족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렸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은 로힝야족을 비롯한 인도 계통의 30여 만 명을 추방하였고, 1978년에는 20여만 명이 또 추방당했다. 1982년에는 국적법을 개정하면서 로힝야 족의 국적을 박탈하여 무국적자로 만들어버렸다. 1988년 88혁명 이후 위기감을 느낀 군부는 또다시 로힝야 족 탄압에 나섰다. 로힝야 족 탄압은 군부가 힘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얀마에 민주화 바람이 거세지다가 결국 2015년에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집권을 하게 되자, 군부는 다시 로힝야 족 탄압에 나서 2016년 소위 인종청소를 감행하게 된다.
요힝쟈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음 영상을 참고하면 좋을 것같다.
youtu.be/AUidE6V8Znk
주변국들은 로힝야족 학살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태도들을 견지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에 대립하기에는 경제적 연결 고리가 문제가 될 것이고, 침묵하자니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 눈총을 받을 것이 뻔하니 발언은 하되 책임질 일은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족 문제를 세력 유지에 이용하는 군부
그런데 여기서 좀더 세밀한 내막을 살펴보자. 버마 군부는 실제로 로힝야 족과 싸운 적이 없다고 한다. 무슨 소린가? 그들은 말한다. 로힝야 족을 몰아내고 죽인 군인은 라카인 주정부군 더 정확히는 아라칸 아미라고 불리는 아라칸족 군인들이라고.
앞서 언급한대로 실제로 특히 주 지역 즉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방에는 그 주의 주정부군이 있다. 그들은 자주 연방정부군(버마족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아래의 분쟁 지역 지도를 보면 작은 전투에서부터 대규모 전투까지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어떤이는 소수민족의 독립을 목표로 한 분쟁이라고도 하고 어떤이는 소수민족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권과 영달을 위해 싸움을 벌이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쨋든 버마 군부 쪽에서 보면 한자성어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오랑캐를 이용해서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미얀마 민정의 사실상 수반인 아웅산 수치만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녀는 정치적 실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군부를 손아귀에 넣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얀마 헌법은 상하원 국회의원의 25%는 비선출의 군인들이 차지하도록 되어 있다.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 75% 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하도록 해서 원천적으로 개헌을 못하도록 해놓았다. 또한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군부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군부 독재가 완전하게 종식되지 못한 민정이 5년 지속된 셈이다. 그동안 군부는 로힝야족 학살 사건을 부추겨 고질적인 문제는 군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면서 한편으로는 근거가 확실치 않은 선거 부정 문제를 지속적으로 부각시켰다. 2020년 80% 넘는 압도적 지지를 받은 아웅산 수치의 NLD당 득표를 군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 전에는 코로나19를 빌미로 선거를 연기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미얀마 군부는 초헌법적 존재이며, 막강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소유자 집단이다. 한손에는 총, 다른 손에는 돈을 쥐고 있는 것이다. 맥주에서부터 보석 광산, 건설업을 비롯한 국가 기간 산업의 대부분이 군부 소유이고, 이 군부 재벌의 회장이며 동시에 군 최고사령관인 흘라잉이 이번 쿠데타의 주역이다. 군부 혹은 군 출신 장성들이 가지고 있는 기업들은 순수 민간기업에 비해 엄청난 규모이다. 민간기업은 군부 기업에 비하면 중소기업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5년 간 미얀마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아웅산 수지 국가 고문 및 그녀의 정부가 2020년 선거를 통해 다시 압도적 재신임을 받았다. 이렇게 되면 민주 정부가 헌법 개정을 포함해서 본격적으로 군부를 개혁하기 시작할 것이 자명했다. 미얀마 국민들 역시 그것을 원했다고 볼 수 있다. 궁지에 몰린 군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다시 정권을 찾아오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쿠데타는 군부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배후에 중국이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배후에 중국이 있다고 강력하게 의심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쿠데타를 일으킨 흘라잉 사령관은 중국 시진핑의 주구(走狗)로 희화한 그림이 미얀마 네티즌 사이에 돌고 있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미얀마를 찾아 흘라잉 사령관을 만나고 간 보름 뒤에 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진 것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참고 자료 : 미얀마인의 페이스북 커뮤니티 그룹)
참고자료를 보면 상단에 코로나19 예방 주사를 맞고 있는 군인들 사진이 올라와 있다. 중국이 제공한 백신으로 보인다. 미얀마 국민들에게 맞힐 백신은 인도로부터 수입하기로 계약되어 있었는데 쿠데타로 인해 교역이 끊긴 상태라 미국이나 서구에서 개발한 백신은 분명히 아닐테니까 말이다. 국민들은 안중에 없는 군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아닌가 한다.
또한 공항이 폐쇄된 상황에서 중국 쿤밍(곤명)에서 다섯 대의 비행기가 양곤 공항에 내렸고, 거기에는 각종 통신장비와 IT인력들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장비들과 인력은 인터넷을 감시하거나 차단하는 작업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미얀마 서부 인도양 연안의 짜욱퓨(Kyaukpyu)에 대규모 가스 및 유류 저장시설을 짓고, 여기서부터 중국의 쿤밍까지 가스관과 송유관 시설을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짜욱퓨에서 만달레이를 거쳐 쿤밍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건설 사업도 계획 중이다. 중국 시진핑의 일대일로 공정 중 바닷길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말라카(말레이시아-싱가포르) 해협을 피해서 안정적으로 중동의 에너지 자원을 수송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 이 사업을 완공 혹은 계획 중인 것이다.
다음 영상을 참고로 보자. 영상 속 주민 인터뷰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중국은 주민들에게 아무런 사전 동의없이 장비와 인력들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 부두를 만들고, 저장탱크를 지었다고 한다. 평화적 항의 시위를 하는 이 지역 사람들 10명이 체포되었고, 3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아웅산 수치 정권이 들어서자 석방되었다고 한다.
미얀마 군부와의 비밀 협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미얀마는 중국에게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친 서방적인 아웅산 수치를 끌어내리고 친 중국적인 군부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중국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상황(!)임 셈이다.
미얀마는 알려져 있다시피 기부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이다.
내가 겪어본 미얀마 사람들은 너무나 착하다. 그들의 심성은 천사와 같다. 실제로 여러 번 체험했다.
그런 그들이 분노하고 있다. 50년 넘게 군부에 짓눌려 살아온 지난 세월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고 있다.
도와달라고 애타게 외치고 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대다수의 미얀마인들은 한국을 무척 동경한다. 드라마 등 한류가 가장 깊게 스며들어가 있는 나라가 미얀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을 아주 좋아한다.
평범한 대한민국 시민인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보인다. 단지 SNS를 통해, 우리도 총칼을 든 자에게 삶을 위협당했던 때가 있었다고, 그리고 온몸으로 저항해서 결국에는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고맙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것 뿐인 것 같다. 선량한 미얀마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용기와 격려를 주는 것이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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