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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미얀마

미얀마 쿠데타를 보면서

by 리치샘 2021. 2. 5.

나는 내가 가장 많이 다녀왔던 미얀마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그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스멀스멀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사실과 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군부라는 막강한 세력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 사이의 상충 때문이었다. 아웅산 수치를 정점으로 하는 문민정부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치적 기반은 살얼음판이라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다. 

미얀마는 정치적으로 우리나라와 닮은 측면이 많다. 과거 싱가포르가 롤모델로 삼았던 나라가 바로 미얀마였다. 우리에게 미얀마(당시는 버마)는 70년대 아시아 축구의 맹주로서 우리를 번번히 낙담하게 만들었던 나라다. 그렇게 부유하고 강한 나라였다.
그런 미얀마가 1962년 네윈의 쿠데타(우리나라는 61년)로 시작된 군부 독재가 네윈 26년, 테인 쉐인 등 27년 합계 53년 간 지속된 결과(우리나라는 박정희 정권이 26년 간이었음. 전두환 정권 8년을 포함하면 34년), 지금은 아시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1988년 8월 8일 소위 8888 민주화운동과 승려들의 샤프란 혁명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 민주화를 성취하는 듯했지만 군부의 탄압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때 정권을 잡은 테인 쉐인(딴 쉐)은 2005년까지 17년 동안 친중국 반미국식 철권 통치를 하면서 미얀마를 낙후된 국가로 만들었다. 이후에도 민주화 욕구는 끊임없이 분출되었다. 그 결과 드디어 1990년 선거를 통해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당이 압승을 하면서 군부 독재에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그러나 그마저 군부에 의해 뒤집혀, 아웅산 수치는 15년 간 가택 연금을 당했다.

2015년 선거 결과 다시 압승을 한 아웅산 수치의 NLD당이 드디어 집권을 했고, 그리고 지난 해 11월 선거를 통해 다시 NLD당이 83%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어 민주 체제가 뿌리를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군부의 지지를 받는 통합단결발전당(USDP)과 기타 23개 야당은 코로나19의 확산을 이유로 선거를 연기할 것을 요구해왔고, 선거가 끝난 후에는 부정선거라는 트집을 잡으며 쿠데타 가능성을 언급하며 위협해오다 2021년 2월 1일 결국 미얀마 총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의 주도로 쿠데타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로써 미얀마는 다시 잃어버린 50년 시대로 복귀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졌다. 

youtu.be/JJrql5eoa1Q

에어로빅 교사 Khing Hnin Wai

이 영상은 에어로빅 교사인 Khing Hnin Wai가 수도 네피도의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으로 통하는 20차선 도로 앞에서 평소대로 에어로빅 연습하는 장면이다. 영상의 중반부에 경광등을 번쩍이는 검은색 차량 10여 대가 대통령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웅산 수치를 구금하러 가는 모습이 잡힌 것이다.

군부는 53년 간 버마를 통치하면서 많은 이해하지 못할 정책들로 미얀마의 국력을 쇠퇴시키고 경제적 성장을 가로막았다. 몇 가지 예을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쇄국정책이다. 외국과의 교역을 막아 지금도 수십 년된 낡은 차량들이 위험스레 길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양곤과 네피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건물은 경제력을 반영하듯 허스럼하다. 문민정부 들어서 많이 개방이 되어 일본 자동차 조립공장도 생기고, 중국산이 대부분이긴 해도 새 차들이 수입되어 길거리 모습이 많이 새로워졌다. 

둘째 군부의 나눠먹기식 권력 행사로 부정부패와 관료적 행태가 심각하다. 라스베가스 카지노의 최대 고객이 미얀마 군부라는 얘기가 있다. 미얀마에서의 사업 관련 일은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고 한다. 미얀마 최대의 맥주, 시멘트, 빌딩, 건설업체는 모두 군부의 소유물이다. 주산품인 옥, 루비 등 보석 광산 역시 군부의 소유라고 한다.
다음 영상에도 소개되고 있듯이 대형 덤프트럭이 쏟아내는 돌과 흑더미 속에서 옥을 찾아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최상위층에는 군부가 있다. 그들은 무리한 노동을 강요하기 위해 마약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youtu.be/M_VmAxtRE8I

미얀마 최고의 갑부는 1988년부터 20여 년 간 최고통치자였던 테인 쉐인(딴쉐)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권력과 이권을 쉽사리 내놓겠는가? 그래서 쿠데타가 반복되는 거다.

미얀마 네피도에 있는 우빠다산티 파고다. 군부 통치자 테인 쉐인이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youtu.be/4XjhrYWAJXQ

셋째, 정책들이 근시안적이고 졸렬한 것이 많았다. 최대 도시 양곤이 공해가 심해지자 가장 일반화되어 있던 오토바이의 시내 통행을 금지시켜버렸다. 그래서 영곤 주변의 농민들(미얀마의 주력 산업은 아직도 농업이다)은 작물을 내다팔 교통수단이 없어진 것이다. 물론 경계지역에 새 시장이 형성되긴 했지만. 유일한 고속도로인 양곤-만달레이 고속도로는 트럭이 다니지 못한다. 따라서 물류 이동의 근본 목적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전시용 길에 불과하게 되었다. 문민정부 하에서도 그 점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설계와 시공상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 문제의 배경에는 분명 비리가 있었을 것이고. 핀우린 지역은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원지대, 기후가 커피 재배에 적격이라고 한다. 그런데 커피 농장이 그리 많지 않고 황무지로 버려진 땅이 많다. 그 이유는 땅 주인이 경작 능력이 없는 군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땅이니 내 맘대로 한다는 식인 거다. 

넷째 갑작스럽고 즉흥적인 조치들이다. 영국과 일본 식민지 영향으로 좌측 통행을 하던 차량들을 사전 사후 조치없이 갑자기 우측 통행으로 바꿨다. 통행 방향의 변경은 운전석의 위치 및 승객의 승하차 방향을 좌우하고 사고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사전에 충분한 준비와 사후 운전석 및 출입문 변경 등의 조치가 따라야 당연한데 아직도 미얀마에는 좌측통행용 차량들에 대한 개보수 없이 시행해서 도로 한복판으로 사람들이 차를 타고 내리는 풍경이 아직도 많다. 이런 갑작스런 조치는 수도를 양곤에서 네피도로 어느날 갑자기 옮긴 사건으로 절정을 이룬다. 미국의 포격에 대비하고, 군 사령부가 있는 미얀마 중부의 핀마나 인근으로 신도시를 만들어 옮긴 것은 2005년 11월 6일 이른 새벽이었다. 마치 기밀 작전을 벌이듯 수백 대의 트럭을 동원해서 이사를 했다고 하는데, 갑자기 근무지가 바뀐 공무원들이 네피도로 못가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월급을 배 이상 올려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래 전부터 중국의 입김을 강하게 받아온 동남아의 나라들,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은 이번 쿠데타에 대해 내정 문제라고 언급을 회피하거나 일부는 동조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군부 통치 혹은 공산당 1당 독재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태국은 군부가 통치 중이고,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은 공산당 1당 독재국가다. 특히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중국의 자본(소위 일대일로 공정)에 나라가 거의 잠식당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중국 편향적이다.
모택동은 권력은 총에서 나온다고 했다. 가재는 게 편고 초록은 한빛이라고 했던가? 

미얀마 갑부 Top 10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고 있는 미국과 인도가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미국은 일단 말문을 열어 쿠데타를 비난하면서 제재를 하겠다고 하고 있다. 인도는 아직 눈치를 살피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중순 능청스럽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미얀마를 방문해서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 뿐만 아니라 민 아웅 흘라잉 군참모총장을 만났다고 한다. 이 만남을 통해 모종의 밀약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다. 
youtu.be/J0MYWR6Ndio
 

New Yangon city 프로젝트에 대한 중국 측 홍보 영상

한 때 지구상의 마지막 불루오션이라고 각광을 받으면서 많은 해외 자본들이 미얀마에 들어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양곤만 하더라도 중국은 양곤강 서쪽에 New City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으며, 일본은 우리 인천공항이 중도에 포기했던 바고 신공항 건설을 비롯해서 양곤 남쪽의 탄린 지역에 항구와 공단을 건설하고 토요타 자동차 조립공장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이 입주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싱가포르와 한국의 자본이 공단을 만들고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중국의 새 도시 계획 지구 남쪽에는 한국 자본(GS건설)이 양곤과 달라(Dala)를 잇는 다리를 건설 중에 있다.  

또한 중국은 중동의 석유와 가스, 미얀마의 인도양 쪽에서 나는 가스를 중국으로 직송하는 가스, 석유관을 미얀마 중서부 짜익퓨 항에서 중국 남부 쿤밍까지 이미 깔아놓은 상태다. 고속도로와 철로를 깔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고속도로와 고속철 공사 및 발전소 등 기간 시설을 중국에 의지해서 건설했던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대 중국 채무 상환에 허덕이면서 모라토리움 상태까지 이른 것을 본 미얀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돈 앞에 약해지는 인간의 속성상 이면에 어떤 밀약을 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당분간 그 자본들의 누수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웅산 수치를 지지하는 대다수의 미얀마 국민들이 비폭력저항운동으로 다시 군부를 내몰 수 있을 지, 아니면 막강한 재력과 군사력으로 군부가 시민들을 탄압하면서 공포정치를 이어갈 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예단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쿠데타 상황을 자초했는지도 모를 점들이 뇌리를 스치기도 한다.
첫 번째, 문민정부 6년 차까지 오면서, 군부가 만든 헌법을 왜 개정하지 못했을까? 자녀가 외국 국적인 경우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든지(이 조항은 아웅산 수치를 겨냥한 것임), 국회의원의 25%를 군인들이 선거없이 차지한다든지 하는 악법 요소를 84%의 지지를 받은 문민 정부가 고치지 못했다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미얀마 현행 헌법상 국회의원 75%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개정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중 1명이라도 포섭하면 될 일을 왜 못했을까? 
두 번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정치적 기반 특히 인물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정치적 포용력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50여 년 동안 권력을 잡은 군부이기에 유능한 인물들이 군부 쪽에 상대적으로 많이 포진해 있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 국민들의 희생으로 권력을 이양받은 아웅산 수치 쪽에서는 군부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었야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이렇든 저렇든 선량하고 마음씨 고운, 세계 최고의 기부지수를 가진 미얀마 국민들이 탐욕에 눈이 먼 총든 이들에게 더이상 희생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이 미얀마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의 진실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