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귀국하는 날 몽몽의 차에 뜻밖의 손님이 하나 더 늘었다. 쪼묘왕의 아들이다. '깐초?'하고 이름을 부르니까 'No, 깐초'한다. 앞에 덧붙은 이름자가 있는 모양인데 듣고도 까먹어버렸다. 너네 아빠하고 내가 삼촌지간이니 너는 내게 4촌인 셈이다. 그런데 다섯 살도 안된 요 녀석 꽤 똑똑하고 맹랑해졌다.
아침에 엄마가 일찍 일어나 다다까 발라서 몽몽의 차를 타고 바람 한 번 쐬라고 보낸 모양이다. 하긴 그 엄마는 돌이 아직 안된 둘째 보살피는 일도 힘들 텐데 설상가상 며칠 전 허리를 다쳤으니 개구장이가 되어가고 있는 큰 녀석을 한 나절 쯤 떼어놓고 싶을 법도 하겠다.
자기한테 잘 해주는 일행 중 한 사람인 최 원장의 손을 잡고 졸졸 따라다니면서 때로는 앞장서서 맛있는 것도 사달라 하고, 장난감도 챙기고 했다. 최원장은 이 녀석 때문에 돈 많이 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네피도에서 고속도로로 4시간을 달려 만달레이 공항에 도착했다. 늦는 것보다 빠른 것이 낫다해서 서둘러 나섰더니 비행기 발권 시간은 오후 5시인데, 3시도 안되어서 도착했다. 여기서 열하룻 동안 우리를 태우고 다녔던 몽몽과 올 겨울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깐초도 바이바이!
발권창구로 들어가는 문이 아예 닫혀 있어 저기 보이는 편의점에서 산 캔 맥주로 무료함을 달랬다. 진열되어 있는 차도 구경하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시간은 지독히도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오후 4시 57분 발권 코너 쪽 문이 열려 들어가려고 하니 보안요원 아가씨는 3분을 더 기다리라고 한다. 2시간을 기다렸는데 3분 쯤이야. ㅎㅎ.
들어서자마자 짐 검사를 했다. 등짐 가방에 부탁받아 넣어둔 술이 걸리긴 해도 별 문제 없이 통과했다. 그리고 게이트 쪽으로 가서 발권하는 아가씨가 알려준 만달레이-방콕행 방콕에어웨이즈 제공 무료 카페를 찾아갔다. 과일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탑승 시간을 기다렸다. 한 병에 5천 짯하는 비싼 맥주도 한 병 시켜 마셨다.
여기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단지 방콕에서 환승하는 절차와 엄청나게 많이 걸리는 환승 시간을 걱정하면서 일행에게 부산행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로 중간에 새기 없기를 당부당부했다.
비행기가 떠야 할 시간은 7시, 그런데 타야 할 비행기가 보이지 않았다. 6시 50분 쯤에 비행기 한 대가 착륙을 했다. 설마 저 비행기가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는 아니겠지 했는데 이 탑승 게이트에 그 비행기가 붙더니 손님이 내리기 시작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방콕에서 환승 시간이 모자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래도 출발이 지연될 것 같아서였다. 무슨 택시도 아니고 사람들 내리고 바로 새 손님 태운 다음 이륙한단 말인가? 틀림없이 지연 출발할거야. 다만 지연 시간이 좀 줄어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좀체 탑승 게이트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8시를 넘겼다.
방송이 나왔다. 비행기 탑승에 관한 좀더 정확한 정보가 있으면 알려주겠단다.
나는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9시가 다 되어서야 비행기가 기체 이상으로 뜨질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100여 명이나 되는 승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방콕에서 환승해서 미국으로, 유럽으로, 한국으로 가야하는 손님들이 항공사 직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서너 명 되는 직원들은 환승할 비행기 편을 파악하고 연락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도 환승할 것임을 알리고 대책을 세워달라고 한 직원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실무책임자가 아니었고, 단지 내 이야기를 듣고 실무책임자에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실무책임자에게 다가가기에는 서 있는 줄이 너무 길었다. 그 와중에 미국 보스턴으로 간다는 한 미국인은 실무책임자에게 자기의 요구 조건을 아주아주 집요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당신네 회사가 잘못했으니 내게 보스턴행 비행기 비지니스석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다음에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실무책임자는 전화기를 세 대나 놓고 이 사태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미국인이 실무책임자를 붙들고 거의 1시간을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동안 마음이 바쁜 나는 내 나름대로 우리가 예약해둔 방콕발 부산행 항공사인 제주항공에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전화 번호 몇 개를 찾았다. 전화를 걸었으나 어느 전화는 신호만 가고 전화를 안받고, 어느 전화번호는 아예 신호 자체가 가지를 않았다. 한국의 고객센타에 전화를 걸었더니 업무외 시간이라면서 업무시간에 전화하라는 자동응답이 나온다.
궁여지책으로 제주항공 홈페이지에 1:1문답 코너에 글을 남겼다. 그 때 시간이 11시가 넘어 이미 비행기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기대한 것은 제주항공으로부터의 전화였다. 다섯 명의 손님이 집단으로 탑승을 하지 않았으면 필히 이유 파악차 전화라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 비행기가 이륙하는 시각인 0시 20분까지 연락은 없었다.
상황은 아주 불투명하게 되고 말았다. 하릴없이 페이스북에 지금 만달레이 공항에 있다. 비행기가 지연되고 있다. 비행기 문제로 결항이 되었다. 이런 류의 상황 중계를 올렸다.
1시가 다 되어 결정을 했다. 일단 만달레이에서 항공사 측이 제공해주는 호텔에서 자고, 아침 9시 반 특별 비행기 편으로 방콕으로 가자고. 실무책임자 아가씨인 몬 미앗 뚜(Mon Myat Thu)는 우리의 결정을 받아들여 호텔 예약과 항공권 회수, 수화물 반환 및 호텔로 가는 차편 등을 일사천리로 처리해주었다.
그런데 제공해준 호텔인 머큐리 호텔은 호텔에서 차로 1시간이나 떨어진 만달레이 왕궁 북쪽 만달레이 힐 바로 아래에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고 지친 몸을 씻고서 혹시나 해서 제주항공 14일짜 표를 살펴보니 5명분의 좌석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약을 해놓고 뒤 방콕에어웨이즈사에 청구를 할까 하다가 결제 단계에서 중지했다. 좌석은 남아있음을 확인했고, 생돈 들여 결재를 했다가 환불에 어려움이 생길 것같은 예감에서 어쨋든 방콕에 가서 해결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이 때가 오전 3시였다.
만달레이 머큐리 호텔
8월 13일, 제대로 잠도 못자고 다시 9시 반 비행기를 타기 위해 7시에 밥 먹고, 7시 반에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공항으로 갔다. 탑승을 위한 수속을 다시 밟고 수기로 쓴 비행기표를 들고 게이트로 갔다.
거기에는 잠을 자지 못한 듯 눈이 퉁퉁 부은 몬 미앗 뚜가 서 있었다. 자세는 여전히 의연했다. 강한 책임 의식이 배여있는 듯한 자세에 감동을 받았다. 'You are a very very strong woman!'이라면서 엄지척을 했다. '화이팅'도 외쳐주었다. 그녀는 환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비행기에 탑승해 보니 그 많던 손님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200인승 비행기에 달랑 열 명 남짓 탔다. 새벽 특별기로 다 떠난 것일까?
자리에 앉자 어제의 고장난 비행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마음 편치 못했다.
어쨋든 방콕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그 지루하고 느려터진 수안나폼 공항의 입국 수속을 밟아 공항청사로 들어와 꼬불꼬불 미로 동선을 더듬어 부산행 비행기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항공 코너부터 찾아갔다.
안내 센터에 있는 무뚝뚝한 남자의 말없는 손가락질 안내를 받아 한참을 걸어서 제주항공 티켓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거기서 다시 한국인 직원을 찾았다. 다행히 자리에 있었다.
아가씨인 듯한 직원은 처음에는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는 둥 속뒤집는 소리를 했다. 왜 표를 다시 끊어야 해? 나는 잘못한 게 없어, 다른 항공사의 어쩔 수없는 사정 때문에 비행기를 놓쳤고, 그 사정을 그 쪽 항공사나 나도 백방으로 알리고 대책을 세우려 했지만 당신네 회사에서 응답이 없어서 못했을 뿐인데 이제와서 표를 새로 끊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따졌다.
그 직원은 방콕에어웨이즈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고 본사로부터도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방콕 항공사에서 궁여지책으로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고, 그 메일은 내게도 보내왔었다, 나는 나대로 당신 회사 홈페이지 1:1 코너에 글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이 업무시간인데 확인도 해보지 않았다는 말인데 당신들 정말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거냐고 호통을 쳤다.
그제서야 그 직원은 꼬리를 내리면서 날짜 변경에 따른 패널티로 1인당 600바트 씩 3,000바트를 내면 표를 끊어주겠다고 했다. 방콕에어웨이즈에 청구를 하기 위해서 영수증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방콕에어웨이즈 창구로 갔다. 영수증을 내밀면서 돈을 갚아달라고 했다. 여직원 세 명은 횡설수설하더니 다음과 같은 문서를 만들어주었다. 이 문서를 가지고 어쩌란 말이냐고 했더니, 메일 주소를 가르쳐주면서 그 쪽으로 이 문서와 함께 청구를 하라는 것이다.
하루가 지연이 되었지만 일단 귀국하는 비행기표는 확보했다.
그리고 비행기 탈 시간까지 10시간 넘게 남았다. 공항 청사 안에서만 맴돌 수는 없는 노릇. 방콕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기실 나는 방콕 시내 다운타운 쪽으로는 가본 기억이 없다. 혹시나 환승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남으면 왕궁 정도는 가봐야지 하는 생각에 대략의 교통편을 파악해둔 상태, 일단 기차를 타기로 했다. 수안나폼 공항에서 다운타운까지 가는 전철을 탔다. 역은 A1부터 A8까지 역명 대신 번호를 붙여놓았다. 우리는 종점인 A8역인 파야 타이 역에서 내렸다.
왕궁을 가고 싶은 데 어떻게 가면 되느냐고 안내 센터에 이야기했더니 왕궁이란 말 즉 King's Palace를 알아듣지 못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 같아서 지도가 있으면 달라고 했다. 지도를 준다. 그런데 글자가 너무 작다. 해독이 안된다. 이런 경우에 돋보기가 있어야 하는데.... '꽃보다 할배'가 떠올랐다. 겨우 해독해보니 King's palace가 아니고 Grand palace다. 이러는 동안 성질 급한 일행은 4층에서 3층으로, 2층으로 막무가내로 내려가버린다.
어쩔 수 없이 일생을 쫓아갔다. 그리고 1층 계단 끝에서 택시를 세우고 호객을 하고 있던 택시 운전사의 꼬임에 넘어가 무려 5명이 한 대의 택시를 탔다. 왕궁으로 가잤더니 왕궁은 오늘 문을 닫았단다. 그러면 강가의 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키오산 로드가 갑자기 생각 나서 말이다. 그런데 가던 도중 운전사가 한국인 친구가 있다면서 전화를 건다. 화상 전화였다. 한국인의 음성이 나오니까 반가웠다.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하는 양반이었다. 이 양반이 빠트남 시장을 추천한다. 카오산 로드는 6시가 되어야 시장이 열린다는 기사의 말도 있고 해서 가봐야 헛걸음할 것 같아서 차를 돌렸다. 200바트를 더 달라고 했다. 허걱~ 빠트남 시장은 파야 타이 역 근처에 있었다. 걸어서 가도 될 곳을 무려 600바트나 들여서 뱅뱅이를 돌다가 온 것이다.
어쨋든 여기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그리고 중국식 레스토랑 홍기(HongGi)에서 저녁까지 먹었다. 태국 술 삼송을 주문했으나 없다고 해서 인근의 편의점에 가서 대신 홍쏭을 사다가 마셨다.
서빙하는 오른쪽의 이 아가씨는 어디 출신이냐니까 미얀마 출신이란다. 미얀마 출신이라고 하니까 우리의 미얀마 통역사 임 샘이 나서서 말을 붙여본다. 미얀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환갑을 넘긴 임 샘은 밤잠 안 자고 미얀마어를 공부해서 이제는 제법 의사소통을 할 정도가 되었다. 대단한 사람이다.
미얀마라고? 미얀마에 당신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은 못봤어.
네팔 출신 미얀마 사람이에요.
그럼 여긴 뭐하러 왔어?
돈 벌러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인들은 경제적으로 동남아에서 가장 빈곤하다. 돈을 벌기 위해 태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좀더 높은 학력에 더 열심히 공부를 한 사람들은 우리 나라로 온다. 이 경우는 태국인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인 것이다. 임금 수준이 미얀마의 10배, 태국의 5배 정도 되니까 말이다.
최근 뉴스를 보니 외국인 근로자가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업종에 따라서는 95% 이상이 외국인 근로자로 채워져 있는 경우도 있단다.
그 일자리는 우리 젊은이들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인지, 그만한 임금을 받는다면 우리 젊은이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는 것인지...
걷다보니 A7 정거장인 막카산(Makkasan) 역에서 수안나폼 행 기차를 다시 탔다.
하루를 까먹고 귀국 비행기를 탔다. 잘못 꼬였다면 이틀 이상 이국에서 헤맬 뻔했다.
8월 14일 아침 우리는 무사히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동안 고락을 함께 해준 동반자들께 다들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행기를 쓰는 지금은 방콕 에어웨이즈 항공사와 손해 배상건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이 항공사는 배상이나 환급에 대해 매우 짜다. 잘하면 제주항공에 추가로 지급한 돈은 배상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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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골프+여행+봉사(기부)활동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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