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를 들면 잠시 뜸을 들인 후 낮고 투박한 투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처사~”
관동절의 주지 스님인 비구니 원공 스님이다.
“초파일날 올끼제? 올라카먼 좀 일찍 와!”
자못 명령조의 말씀에 기가 꺾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하고 만다. 일찍 안 올 줄 뻔히 알면서 하시는 말씀이고, 나 역시 법회 시간에 못 맞출 것을 스스로 예견한다. 그만큼 스님과의 대화는 부담이 없다.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원공 스님과 대면하면 마치 한 동네 사는 정다운 아지매를 대하는 기분이다. 관동절도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는 집과 같은 안온함을 주는 곳이다.
몇 년 전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해서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거의 모두 잃어버린 점이 아쉽긴 하지만 절이 그곳에 있고, 불사를 이룬 원동력을 주신 지혜 스님이 여전히 가끔씩 요사체 앞에 하얀 고무신을 가지런히 놓으시고 정좌해계시고, 원공 스님의 민둥머리를 쓸어넘기는 버릇이 우스꽝스럽고, 오가는 비구니 스님 중에선 원공 스님 뒤를 이을 법한 언행이 친근한 분도 계시다. 그래서 어릴 적의 추억을 유추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즐거운 일이다.
과거의 관동절은 민가의 사랑채같이 대청마루가 있어 절로써는 아주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원공 스님이 거처하는 ㄱ자 형태의 건물 자리가 그 자리인데, 대청마루 양쪽으로 방이 있었고, 아궁이도 마당 쪽으로 나 있었다. 툇마루로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툇마루에서 모과나무 쪽으로 이어지는 언덕빼기에는 특이한 맛을 내는 흙이 있어서 그것을 파먹은 기억이 난다.
마당에는 동네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토마토, 참외 등 고급(!) 먹거리들이 종종 키워졌다. 소 먹이러 가서는 소를 매봉채 부근에 소를 풀어놓고 약속이나 한 듯이 한걸음에 내달아 중봉에 있는 넓은 마당(아마도 헬기장이었던 듯)에서 온갖 놀이들을 고안해서 해질녘까지 놀다가 오곤 했다. 어떤 특별한 날에는 절까지 진출을 해서 절 입구의 도랑에서 가재를 잡아 아궁이에서 구워먹고, 마당의 과일이랑 모과를 설쩍하기도 했다. 툇마루 언덕빼기는 흙 파먹은 구멍이 두더지 구멍처럼 나 있었고, 사명대사의 혼이 깃든 모과나무는 아이들의 등살에 못이겨 거의 고사 직전까지 갔었다.
이런 아이들의 철부지를 넘어선 악동같은 행위에 대해서 스님은 얼마나 성가시고 화가 났을까? 가끔은 절을 지키는 분에게 들켜서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장난은 끊임없이 대를 이어서 계속되었다.
지혜 스님이 사명대사의 호국혼과 큰 스님으로서의 경지를 이어받고자 관동절에 오신 해가 1969년이라고 한다.
많은 세월을 절치부심하시며 절을 중흥하려고 노력을 하셨다는데, 표충사(원래는 절사寺가 아니라 사당 사祠이었음)라는 원래 이름을 단장면에 빼앗긴 시간 역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표충사 대신 구표충사라는 이름으로 사랑채를 안고 지나온 세월이 나와 나의 다섯 번째 막내 동생 어린 시절을 합친 세월만큼 되었다.
유년의 추억을 앗겨버린 아쉬움은 있지만 지혜 스님과 원공 스님이 앞장서고 밀양시와 조계종단에서 밀어주어 이제 관동절은 대법사라는 새 이름으로 큰 호국사찰로 거듭나고 있는 듯하다. 대광보전에는 단장면으로 옮겨버린 사명대사의 영정 대신 새로운 색채와 정교한 솜씨로 그려진 젊은 사명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장난감 같은 범종은 어른들 여남은 명이 고개를 들이밀어도 될 만큼 큰 범종으로 바뀌었다. 사명대사 유적지 복원 사업으로 무안의 표충비각, 고나리의 생가지, 대법사를 잇는 관광벨트가 구성되고 있어 암연 중에 사명대사의 원력을 받고 자라온 우리 삼강동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을 진작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올 사월 초파일, 예년에도 그랬듯이 해거름 무렵이나 되어서 절을 찾았다. 늦은 점심 공양에 눈치가 보이긴 했어도 우리 동네 어머니, 아지매들이 마련한 음식이라 생각하니 나물 두어 가지 섞은 비빔밥이 꿀맛이었다. 원공 스님은 ‘저기 먹을 거 더 있을끼다. 챙겨 먹어래이’ 하시면서 삐딱하게 눌러쓴 보릿짚 모자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정수리의 땀을 훔친다.
관동절은 겉모습은 바뀌어도 이 집을 지키는 사람은 변함없이 한편으로는 다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힘이 있는 분들이다. 원공 스님은 복잡하고 엄청난 경비가 들어가는 불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고,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을 당연시 하시는 지혜 큰스님은 조계종 원로원 수석부회장으로서의 막중한 소임을 소문없이 해내고 계시다.
이제는 안다.
관동절은 애들 등살에 몸살하면서 맺은 모과를 무정하게 따먹는 철부지들을 끝내는 용서하는 곳이고 그 용서는 더 큰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주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