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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조천, 경화동, 덕주동산

by 리치샘 2026. 1. 9.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도로명 주소는 '진해구 조천로'이다. 조천의 유래가 궁금해서 찾아봤다.

경화동의 '조천(造川)'은 본래 '조피천(造皮川)' 또는 '제피내'라 불렸으며, 조선시대 웅천현 중면 지역으로 '피나무(제피나무)'가 많은 시냇가라는 의미로 유래했고, 이후 현풍 등 경북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정착하며 '조천'으로 불리며 진해농악의 뿌리가 된 중요한 마을이며, 덕주봉과 얽힌 전설도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조천(造川)의 상세 유래
  1. 원래 지명: 현재의 경화동 서북 지역(구 경화2가동 일대)이 조선시대 '웅천현 중면 조피천리(造皮川里)'였다고 합니다.
  2. '피나무'의 의미: '조피(造皮)' 또는 '제피(=피나무)'는 특정 나무를 뜻하며, 이 지역에 피나무가 많은 시냇가(川)가 있어 '피나무 시냇가'라는 의미의 '조피천'이라 불렸습니다.
  3. '조천'으로의 변화: '조피천'이 발음하기 편하게 '조천(造川)'으로 줄여 불리게 되었으며, 이는 '냇물을 만들었다'는 뜻의 한자 '造川'으로 표기되기도 했습니다.
  4. 역사적 중요성: 17세기 말 경상북도 현풍과 청도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조천'은 진해농악의 근거지가 되었고, '덕주봉'과 관련된 전설도 생겨난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이상 구글 제미나이에서 검색한 결과)

그러니까 조천은 덕주봉 쪽에서 내려오는 냇물을 지칭하며 동시에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음력 정월 보름을 전후에서 꽹과리며 북, 장구, 징을 울리면서 동네를 도는 농악패가 있어 의아했는데 그 농악이 유래가 깊은 줄 알게 되었다. 

경화동의 유래는 참 아이러니하다. ' 경축하며 화합한다'는 의미로 한자를 조합해서 붙인 이름인데, 이는 일제가 1910년부터 그들의 주거지를 지금의 중원로타리를 중심으로 만들면서, 제황산 자락에 살던 2000여명의 조선인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기 위해 황무지를 바둑판식으로 구획 정리해서 만든 동네 이름이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경축하며 화합하는 동네라기 보다는 쫓겨나 핍박받은 동네인 셈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아래쪽에 덕주동산이라는 아주 작은 공원이 있다. 시멘트로 바위 형상을 만들고 그 옆에 정자를 짓고 나무들로 조경을 한 아담하기 짝이 없는 공원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아파트가 건축되기 전에 이 구역을 통해 안민고개 쪽으로 오른 적이 있었다. 그 때 길가에서 이정표 모양으로 몇 개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그것이 이인(異人, 도인道人이라고도 함) 김덕주를 기리는 내용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그것이 덕주동산이었는데, 2017년 아파트가 생기면서 그곳이 도로와 아파트 땅으로 편입되었고,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재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위치는 지금의 아파트 정문 쪽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진해라고 하는 도시가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본이 조선 침탈을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진해에 해군 통제소인 1912년 '해군방비사령부'을 거제도에서 옮겨오고, 1916년 '진해요항부'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군항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1910년부터 일본군과 일본인들이 상주할 도시를 계획적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1912년에 행정구역 이름으로 진해가 비로소 기록되기 시작했다.

김덕주라는 전설적인 사람도 진해와 함께 한 인물이다.    

안내판에는 김덕주에 관한 전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조천(제피내)에 김덕주가 살았으며 초인적인 힘과 축지법을 사용함은 물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까지 갖춘 특출한 사람이었다. 장복산 바위들을 붙여서 지는 바위집에서 살았는데 출입문은 통바위로 되어 있어 보통 사람은 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 집을 덕주바위라고 불렀고, 일본인들은 선인굴(仙人窟)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덕주바위 즉 김덕주의 집의 위치를 알 수 없고, 다만 약 200m 떨어진 곳에 덕주샘이라는 샘물이 있어 사람들은 그 샘을 신성시 여기고 촛불을 켜놓고  고사를 지내며 비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아래의 덕주동산 조성 스토리를 보면 덕주봉을 중심으로 관련 지명들이 대략적으로 표시되어 있다.

덕주동굴을 형상화한 조형물

김덕주는 평소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 긴 머리를 날리면서 다녔다고 하는데, 이에 연유해서 단정하지 못한 난발을 두고 '덕주 머리'라고 일컫기도 했다고 한다.

김덕주는 왜경에 쫓겨 웅동 쪽으로 사라진 후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김덕주가 남긴 다음과 같은 예언은 그가 이인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1) 흰 다리가 오면 나라가 망한다.
- 일본군 해군의 복장을 보면 정강이 아래에 두르는 각반이라고 하는 것이 흰색임을 유츄해보면 이는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다는 예언이다.

2) 한일거리에 큰 도시가 생길 것이다.
- 1910년 일본군은 진해에 주둔하면서 지금의 중원로타리를 중심으로 그들의 거주지를 건설하고, 그곳에 원래 살고 있던 조선인들을 당시는 황무지였고 한일거리라고 불렸던 지금의 경화초등학교 주변으로 구획 정리를 하여 집단 이주시킨 것을 예언하였다.

3) 오일장이 옮겨 올 것이다.
구한말까지 진해에서 가장 큰 장터는 풍덕개로 지금의 풍호동 지역이다. 일본군이 풍덕개에 비행장을 만들면서 사람들을 경화동 등으로 이주시켰고, 3일과 8일에 열리던 풍덕개장도 경화동으로 옮겨와 오늘날의 경화장이 되었다. 지금도 경화장은 3, 8일에 선다.

4) 웅동에서 뱀들이 꼬리를 물고 올 것이다.
웅동의 소사동에 웅동수원지가 만들어지면서 그곳에서 취수한 물을 진해로 송수관을 따라 오게 하는 것을 두고 한 말. 
웅동 수원지는 원래 일본군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08년 공사를 시작, 1914년 완공되었고 벚꽃 단지가 조성되었다. 이 수원지는 최근에야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5) 벌통 같은 집에 살면 세상 다 된 줄 알라.
벌통 같은 집은 아마도 아파트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이웃이 사라지는 각박한 세상이 올 것임을 예견한 말이리라.

[참고] 도인 김덕주(덕주동산 스토리)

[참고] 진해의 옛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