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입곡공원 단풍길에는 함안 지역의 문해교실(보통 한글교실이라고들 함)에 참가한 어르신들의 시화가 걸려 있었다.
단풍 만큼이나 아름답고 진솔한 글들을 보면서 코끝이 찡한 느낌을 받았다.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여기에 가려뽑은 작품들은 순전히 나의 감동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투리와 표기법 오류는 괄호 안에 바로잡아 표기하였다.)
내 영감 구복수 - 이임순(83세)
당신 만나 산 세월 돌아보니
고생 바가지 원망 바기지 뿐이 넛(었)는데
그래도 6남매 생산해줘 고맙소
아이들이 살갑게 챙겨줄 때마다
영감이 생각나요.
그냥 저냥 사는 게 인생인가 했는데
영감 떠나고 혼자 되고 나니 아쉽기도
하지만 내 세상 만난 것 갔소(같소)
한글 교실에서 글을 배우고 친구 만나고
선생님과 노래 부르고 박수 치며 지내는
오늘이 참 좋구려
내 영감 구북수 씨 나는 잘 사요
만날 때까지 잘 사소.
고생만 한 우리 엄마 - 홍금순(87세)
호미로 밭을 파서 먹을꺼리(먹을거리) 챙겨
오남애 금이야 옥이야 길러주신 우리 엄다
사는게 힘들어 남동생들만 공부시켜
나는 엄마 원망 마이(많이) 했네
고생을 이고 사는 엄마가 실었어(싫어서) 원망하고
미워만 한 못난 딸이 팔순이 넘어
한글을 배우고 있어요
한글교실에 친구 부녕이와 오는 날은
정말 즐겁고 행복합니다
고생만 한 엄마!
그곳에서 즐겁고 행복하세요
이 딸이 두 손 모아 빌어요
비가 오면 - 신용순(73세)
나 어릴 땐 비가 오면
비 맞으며 참방참방
나 젊을 때엔 비가 오면
뒷설거지 걱정
어느새 비가 오면
밭일 걱정
이제는 비가 오면
혼자 방에 앉아 자식네 생각하네
공부 - 김순남(84세)
까막눈이
공부를 한다
굴 읽는 것도 좋고
글 쓰는 것도 좋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다 참 좋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다
한 개 배우면 한 개 이자삐고(잊어버리고)
두 개 배우면 두 개 이자삔다(잊어버린다)
그래도 공부하는 날만 기다리는데
올해만 하면 졸업이란다
내연에는 배우는 것이 없어
이자삐는(잊어버리는) 것도 없겠다만
많이 아쉽다
길 - 차성순(77세)
밭일 하러 갈 적에는
느릿느릿 느림뱅이 길
약주 한잔 걸친 날엔
구불구불 삐뚠 길
우리 손주 올 적엔
번쩍번쩍 황금길
나를 춤추게 한 이장님께 - 임민지(83세)
몇일 전 동민들 회식하는 자리에서 메뉴판
읽는 나를 보고 야 민지 엄마 글자 엄청 잘 읽는
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칭찬해주신 그 날을
잊지 못해 더욱 문해 공부를 하였지요.
지금은 신문 종이 쪼가리(조각)도 보며 읽을 수 있답
니다. 이장님의 칭찬으로 인제 잘난 체 하는
민지 할매가 되어 우리 가족의 박사가 되
었습니다. 항상 남을 칭한하는 임민지가 될게요.
춤추고 싶은 임민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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