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천이 휘돌아 나가는 산중의 편평한 옥토에 몇몇 성씨들이 모여서 저마다 가문의 기와 지와 예를 뽐내며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마을. 대한민국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선정된 고풍스럽고 구석구석이 예쁜 마을이다.
마을 곳곳의 집이며 나무들이 몇 백 년은 더 되는 세월을 버티어왔다. 이 나무 역시 그러하다.
산청은 곳감으로 유명하다. 마을마다 골짜기마다 감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주렁주렁 열린 감들이 붉은 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골목을 들어서면 그윽한 향기가 코를 감싼다. 이 만리향(돈나무라고도 한다)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다.
옛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정갈하게 꾸민 벽과 마루, 섬돌에 예스러운 물건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 감나무도 수령이 6백년 넘었다고 한다. 세월의 무게 탓인지 줄기에 동굴을 만들어놓고 있어도 감은 아직 많이도 달리고 있다. 어머니께 홍시를 드리려고 심었다는 효성의 나무이다.
대문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넝쿨들이 정겹다.
공대를 나와 직장 생활하다 포기하고 여기 이 마을로 낙향한 해설사 양반이 전해주는 이야기로는, 한때 100여 호의 기와집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6.25 전후의 이념 전쟁에서 빨치산의 은둔지로 몰려 아군의 폭격을 받아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고 씁쓸한 이야기이다.
남사천에는 오리와 백로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군데군데 징검다리가 있어 아이들이 징검다리 위에 앉아 물과 노는 장면을 그려본다. 그런데 이 마을을 찾는 아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온전한 흙벽, 어릴 적 두어 평 흙벽방의 내음이 콧가를 스친다.
남사천 건너에는 국악인 기산 박헌봉 선생의 업적을 기려 세운 기안국악당이 있다. 국악기 전시관과 공연 무대, 큰 북이 걸린 누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문 밖에는 코스모스 꽃밭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큰 북을 울리면 태평성대가 오고 소원이 성취된단다.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구나 힘껏 두드려본다. 두드린 이가 스스로 놀라는 웅장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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