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그곳의 깊이 속까지 들어가 현지인의 삶과 맞닿아보는 것과 먼 발치에서 풍광을 보고 즐기며 기념 사진이나 찍는 것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부산에는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서는 절대로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없는 곳이 있다. 그곳이 감천문화마을이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던 나도 실은 감천이란 동네를 이번에 처음으로 가봤다. 그것도 작정하고 간 것이 아니라 광안리 쪽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렸다. 한 시간 남짓 골목길과 산복도로를 둘러봤는데, 전체 길의 10%도 안 되는 답사였다.
내가 살았던 부산은 1970년대이다. 시골 농삿집 아들로 부산에 유학을 갔던 차라 생활 여건은 딱 이 동네와 다를 바 없었다. 사람 한 사람 겨우 지날 정도의 폭으로 된 비탈길과 골목길이 신기하리만치 끊기지 않고 이어지던 곳, 곧은 계단길이라도 있으면 질러가는 길이라 깔닥숨을 몰아쉬면서 종종 걸음쳤던 그런 곳이다.
부산은 원래 남포동, 광복동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비탈에 민가가 닥지닥지 붙은 형상의 도시이다. 가파른 산자락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이다 보니 민가는 대부분 산비탈에 자리했다. 동대신동, 보수동, 좌천동, 부민동, 아미동, 영주동, 영도의 영선동, 청학동 등이 대표적인 동네이다. 내가 살아봤던 동네들이기도 하고. 감천동 역시 예의 동네와 다를 바 없는 곳, 산 속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것으로 보아 여타의 바다 전망이 있는 동네보다는 이 동네의 삶이 조금더 궁핍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한마디로 삶이 고단했던 사람들이 모여살던 동네다. 주민들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고,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과 경기도로 빠져나가고, 이리저리 얽힌 사정 때문에 재개발은 안되는 그런 동네가 지금 빠른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리포트가 종종 나오고 있다. 영도의 산비탈 동네는 한 집 건너 빈집이 있다고들 한다.
고달픈 삶이 서려있는 동네가 예술인이 모여들고, 그 흔적으로 보러 관광객이 모여드는 문화 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변신이라고 생각된다.
김장 김치를 큰 양철 물통에 가득 담아 짊어지고 가파른 계단길 저 아래에서 꾸역꾸역 올라오시던 나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때 나는 동대신동 8부 능선 산자락에서 쪽방 자취 살이를 하고 있었고, 중학생이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산복도로 길 언저리로 기념품, 음식점, 카페 등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고, 그곳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대부분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리고 가게들은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치장들을 하고 있어 눈이 즐거웠다.
가장 인기있는 포토존은 바로 이곳 어린 왕자와 여우가 우정을 확인하는 형상이 있는 곳. 어린 왕자와 여우 사이의 그루터기에 앉아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50미터 쯤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희망! 그것은 이곳을 테마로 한 기념품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유명 관광지 특히 유명한 절 기념품 가게에 가보면 그 절을 테마로 한 기념품은 보기가 힘들고 목탁이며, 등긁개, 볼펜 뭐 그런 류만 보아오다가 이곳의 기념품 품목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외국 유명 관광지에는 그곳을 상징하는 기념품들이 반드시 있었는데 왜 우리만 없지 하는 안타까움이 반푼이나 풀리는 느낌. 부디 번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더러는 자연스럽게, 더러는 아기자기한 사람의 손길이 더해진 조형물과 설치 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쇄락해가는 동네를 되살릴 수 있는 해답을 얻은 것 같다.
전체 동네의 반의 반도 돌아보지 못했고, 이 동네 사람들과의 대화도 시도해보지 못한 눈요기 탐방이었다. 하지만 다시 찾아 더 밀착해서 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그런 곳임은 분명했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동네가 아니라 원주민의 자리를 채워줄 새롭고 매력적인 컨텐츠를 만들어낼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국내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가을 여행 2 - 영광 백수해안의 노을 (2) | 2024.10.06 |
---|---|
2024 가을 여행 1 - 영광 불갑사 꽃무릇 / 천일염전 (1) | 2024.10.06 |
눌차도 둘러보기 (0) | 2024.02.11 |
악양둑방의 거대한 화원 (0) | 2022.05.16 |
밀양의 이팝나무꽃 (0) | 2022.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