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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방

정복과 배신 사이 - 말린체

by 리치샘 2021. 9. 2.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명은 크게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아즈텍 문명과 페루를 중심으로 한 잉카 문명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두 문명은 지도상의 잘록한 부분인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구아, 파나마 등지의 열대 우림으로 인해 서로 단절되어 있어 사실상 교류가 거의 없었다.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1519년 4월 멕시코만에 도착한다. 그에게는 병사 600명과 부역 원주민 300명 정도에 말 16필, 대포 14문, 소총 13자루, 석궁 33대가 있었다. 반면 아즈텍 문명의 당시 인구는 500만이었다.

결과적으로 천 명도 안되는 군대가 500만의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렸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 미스테리한 정복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무엇이 아즈텍 제국을 삽시간에 무너뜨렸을까?
나는 지금까지 아주 간단 명료하게 다음과 같이 알고 있었다.

코르테스에게는 인디오에게 없었던 말이 있었다. 말이 빠른 속도로 휘익 지나가면 사람들의 목이 떨여져 나갔다. 겁에 질린 인디오들이 그래도 그들의 신과 같았던 왕이 이들을 격퇴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왕도 코르테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래서 피라미드형 사회 구조의 아즈텍은 한순간에 멸망했다.

말과 피라미드형 지배구조가 멸망의 결정적 이유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크고 문명이 발달한 나라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는 점은 여전히 이해되는 않은 구석이 있었다.
내가 읽은 책들 대부분은 아즈텍과 잉카 문명을 미스테리한 문명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어느 정도의 해답을 찾았다. 말린체라는 여인이 그 해답의 실마리였다.

말린체(Malinche, 1496년 - 1529년) 또는 도냐 마리나(doña Marina)는 아즈텍 출신의 인디오였다. 라 말린체(La Malinche), 말린친(Malintzin) 등으로도 부른다. 노예생활을 전전하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통역이 되었으며, 에스파냐 침략군의 통역 겸 길안내인을 자처하였으므로 멕시코  남아메리카에서는 배신자, 반역자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말린체의 원래 이름은 말리날리 테네팔(Malinali Tenepal)이다. 멕시코만의 소읍에서 나우아족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귀족으로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 아즈테카 사회에서는 귀족은 남녀 모두 기숙학교에서 다양한 교양을 쌓았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가 재혼하고 새로 아들을 낳았다. 아즈테카 사회에서는 여성도 재산을 상속하고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신의 재산을 새로 낳은 아들에게만 물려주기 위해 딸 말린체를 유카탄 반도의 마야족 귀족에게 노예로 팔았다. 코르테스가 유카탄 지역에에 도착하자 이미 한차례 스페인 인을 만난 적이 있던 마야족 사람들은 그들에게 우호의 표시로 선물과 여자 노예 20명을 바쳤다. 말린체는 그 20명 중 하나였다. 팔려온 다음날 기독교식 세례를 받고 그날 이후 말린체는 도냐 마리나라고 불렸다.(출처: Revista Iberoamericana 21.2 (2010): 57-82)
나우아족 출신이며 마야족의 노예로 살면서 마야어를 배운 말린체는 에르난 코르테스의 통역으로 코르테스의 신뢰를 얻게 되었으며,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에 협력하였다. 
에르난 코르테스와의 사이에서 아들 돈 마르틴 코르테스(Martin Cortes)를 두었다. 코르테스와 코르테스 본처의 주선으로 1526년과 1527년 무렵에 후안 하라미요(Juan Jaramillo)라는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스페인인들을 이르는 말)와 결혼하였다. 후안 하라미요와의 사이에서는 마리아 하라미요(Maria Jaramillo)라는 딸이 태어났다.(위키백과)

You Tube '지식브런치' 영상에서 캡쳐

위키백과에 적혀있는 내용으로 봐서 일단 말린체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확인할 수 있다.
그녀의 근본은 귀족의 딸이었고 교육까지 받았다. 귀족 자제가 다니는 칼 메칵(Cal Mecac)에서 5살부터 수락, 역사, 지리, 종교, 법, 예술 등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자 어머니는 재혼을 했고, 새 남편에게서 아들을 낳았다. 유산을 아들에게만 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9살 말린체를 몰래 마야족 귀족에게 노예로 팔아버렸다.
당시 아즈텍 제국을 세운 나우아족은 이민족으로 북쪽에서 내려와 지금의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워 주변의 부족들을 군사력으로 다스렸다. 그러니까 주변의 부족 국가들에게는 원수였지만 감히 대적하지 못하는 폭군과 같았던 것이다.

아즈텍의 신전(위키백과)


노예로 팔린 말린체는 이곳저곳으로 팔려다니면서 각 지역의 문화, 풍습, 종교적 전통과 사고방식 등을 체험하게 된다.
코르테스는 타바스코 지역에 도착했다. 코르테스와의 전투에서 패한 타바스코 족은 코르테스에게 여자 노예 20명을 주었는데 그 중에 말린체가 끼여 있었다.
말린체는 언어 습득 능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아즈텍어는 물론이고 노예로 살면서 마야어도 익혔다. 크로테즈의 아즈텍 원정 기록자 베르날 디아즈는 그녀를 두고 이렇게 썼다. "예브고 지적이며, 말을 자신있게 잘 하는 여성이다."
코르테스는 이전에 난파해서 마야 인디오들에게 포로로 살았던 아길라르를 통역관으로 대동하고 다녔는데, 아즈텍을 정벌하기 위해 마야어와 아즈텍어를 모두 구사할 줄 알았던 말린체를 중간 통역자로 뽑아서는 그녀에게 세례까지 받도록 했다.
언어 감각이 뛰어났던 말린체는 불과 몇 달만에 스페인어로 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 말린체를 코르테스가 신뢰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즈텍제국은 주변의 30여개 부족들로부터 사람들을 진상받아서 인신공양을 하고, 식인을 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중에서는 마야, 타바스코, 틀락스칼라 등의 부족 국가가 있었다. 자진해서 인신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무력으로 부족을 멸해버리는 무자비함도 갖고 있었다. 이들 부족들은 아즈텍 제국에 대해 직접 표출하지 못하는 불만이 쌓여있었음은 자명하다.
이러한 정보를 제공한 이는 당연히 말린체였다. 코르테스는 약소 부족들을 찾아가 인신 공양의 악습을 폐지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부족은 코르테스에게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코르테스가 가지고 있었던 무시무시한 화력도 협조 약속을 하게 하는데 한몫을 했다.
그렇게 말린체를 동반한 아즈텍 제국과의 협조 관계를 깬 것이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힘이 된 것이다. 코르테스는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하느님 다음으로 말린체의 공이 크다'고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고 한다.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위키백과)


코르테스는 말린체로부터 얻은 부족들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여 아즈텍으로부터 핍박받던 소수 민족들을 규합해서 말린체를 통해 아즈텍에 맞서도록 했다. 이것이 아즈텍 왕조를 무너뜨린 원동력이자 결정타였다.

1519년 4월 타바스코에 도착한 코르테스가 도착했고, 1520년 9월 그 일행들이 가져온 세균 중 천연두가 원주민들에게 옮아 많은 수의 원주민이 죽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천연두가 아즈텍의 전투 의지를 꺾어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역사적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천연두가 치명타는 아니었다는 의견이 많다.

그보다는 아즈텍이 1521년 5월에 멸망하고 난 뒤 몰려들기 시작한 스페인 사람들의 약탈과 살인이 아즈텍이라는 문명을 사라지게 하였다고 본다. 황금과 향신료 등에 눈이 먼 스페인 사람들이 원주민들을 상대로 닥치는 대로 빼앗고 잔인하게 죽였던 것이다.

1522년 말린체와 코르테스 사이에 마르틴이 탄생한다. 기록에 남겨진 최초의 메스티소(Mestizo)인 셈이다. 코르테스와 코르테스 본 부인의 주선으로 1526년과 1527년 무렵에 후안 하라미요(Juan Jaramillo)라는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스페인인들을 이르는 말)와 결혼하였다. 후안 하라미요와의 사이에서는 마리아 하라미요(Maria Jaramillo)라는 딸이 태어났다.

1528년 코르테스는 본국인 스페인으로 귀국했다. 아들 마르틴을 데려가 정식 기사로 키워내고 상속도 해주었다.
1529년 말린체는 천연두에 걸려 죽게 된다. 그때 나이 29세였다.

결국 정복자 코르테스와 비운의 제국 아즈텍 사이에는 말란체라는 여인이 있었다. 말린체는 스페인 쪽에서 보면 정복의 일등공신이지만, 아즈텍 제국을 비롯한 인디오 부족국가들에게는 배신의 아이콘인 셈이다. 지금도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 말린체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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