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은 미국 밀수업자(존 헨콕)가 영국 동인도회사가 홍차 수입 판매를 독점해 수익율이 떨어지자 그 보복으로 동업자들과 모의, 인디언으로 위장해서 일으켰다. 이 사건의 역사적 명칭은 Boston Tea Party이다.
2)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쑨원,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군은 독일의 군사고문단으로부터 군사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군복, 헬맷 등 나찌 독일군이 사용하던 군장을 그대로 수입해 사용했다.
독일군 군장을 한 중국 국민당군(위키백과 사진)
3) 일본은 1943년 진주만 기습에 미국으로부터 배운 비행기와 군함 제조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 폭격기와 항공모함으로 공격했으며, 진주만 기습 직전까지 석유의 70%을 미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미국산 무기와 기름을 이용해 미국을 공격한 셈이다.
4) 마오쩌둥은 중국을 공업화, 산업화를 한다면서 대약진운동을 벌였는데(1958-1962), 농촌에서 철을 생산한답시고 산림을 황폐화시키고, 해로운 참새를 모조리 잡아죽이는 통에 메뚜기가 창궐해서 가뭄, 홍수에 이은 기근으로 대약진운동 기간 동안 무려 2천500만 명의 중국인민이 굶어죽었다.
대약진운동 기간 중 농촌에 만들어진 토법 고로(위키백과 사진)
5) 이어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위축된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선동해 주로 중학생인 홍위병으로 하여금 과거의 모든 전통, 제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여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동안 반동분자로 몰려 적게는 수십 만에서 많게는 2천만 명의 중국인민들이 죽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유교적, 불교적 전통 문화 유산이 사라졌고, 인륜이 무너졌으며, 교육이 황폐화(10년간 모든 학교 폐교)되었다. 중국인들이 현재 벌이고 있는 토픽감의 몰지각 행동의 근원은 문화혁명인지도 모른다.
5) 제1차 중동전쟁 때 유대인 민병대들은 그들의 철천지 윈수인 나찌가 만들어 썼던 무기(체코 산)를 들고 아랍국가들과 싸웠다. 반면에 아랍연합군은 영국이 2차 대전 후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무기를 들고 이스라엘과 싸웠다.
6)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은 당시 버마(미얀마)를 식민지배하고 있던 영국을 몰아내기 위해 중국의 협조를 받으러 갔다가 엉뚱하게 일본인 점령지에 도착, 군사 지식을 배운 후 버마독립군을 창설, 일본군과 함께 버마로 쳐들어가 영국을 몰아냈다(1942). 그러나 몇 년 후 영국군과 협조해서 일본군을 몰아냈다.
7) 9.11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이 아랍에서 패권 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키운 인물이었으며, 아랍권에서 몇 안되는 미국의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다.
8)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즈는 아즈텍 출신의 한 여인을 이용하여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을 정복했다. 말린체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코르테즈의 통역사 겸 정부(情婦)로 크로테즈를 도와 마야를 비롯한 30여 개 소수 부족들을 아즈텍과 이간질 시킴으로써 아즈텍의 힘을 약화시켜 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초의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 혼혈)는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 말린체는 메스티소의 어머니, 코르테즈는 메스티소의 아버지인 셈이다. 말린체는 유럽에게는 영웅, 인디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있다.
9) 나폴레옹은 정복 전쟁 과정에서 너무 많은 전비를 써버려 재정이 바닥이 나자,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미국의 루이지애나 땅(지금의 루이지애나주+아칸소주+미주리주+오클라호마주+캔사스주+콜로라도주 절반+네브라스카+아이오와주+미네소타주+사우스다코다주+노스다코다주+와이오밍주 거의 모두+몬테나주 거의 모두)을 평방km당 8달러 수준인 6천만 프랑에 미국에 팔아먹었다. 이 땅의 현지 시세는 평방Km당 2억 1900만 달러이다.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쳐들어가 스페인 왕을 내쫓고 자기의 친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국왕에 앉혔다. 어쨋든 왕위 값 엄청 비싸게 먹혔다.
10) 유럽은 500년 간이나 절대적 구원군 프레스터 존을 기다리거나 찾았지만 실패했다. 대신 그들은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동방에 비해 약소국이라는 믿음을 극복하고 말라카를 정복하면서 동양을 얕잡아보기 시작했다. '마르코 폴로'와 '바스코 다가마'도 그 중에 속한다. 15세기 들어서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의 오스만 투르크에게 함락당하자 엄청난 충격을 받은 유럽인들은 이번엔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포르투갈의 항해왕 엔리케 왕자는 '프레스터 존'이 남쪽 에디오피아에 살고 있다고 믿고 바스코 다가마를 파견하였으나 역시 찾지 못했다. 그러한 연유로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동양 쪽으로 먼저 진출한 포르투갈은 당시 인구수가 100만 명인 유럽의 변방이었다.
11)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점령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스페인령이었던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의 국가들이 독립운동 내지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멕시코는 1810년부터 1821년까지 전쟁을 치루어 1821년 독립을 쟁취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정복했지만 프랑스 자국은 미국 땅의 거의 절반을, 스페인은 멕시코 등 아메리카 땅을 잃게 했다.
12) 기독교도는 돈에 이자를 붙여 받는 행위(대금업)를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창조를 할 수 있는데 돈이 돈을 낳는 것(일종의 창조!)은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예수)를 죽인 이들이므로 농사나 기술자, 공직자 등의 일에서는 철저하게 배격하고, 어차피 천국에는 갈 수 없는 말종이었으므로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는 것을 묵인했다.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유대인들은 중세 유럽에서 박해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종사한 고리대금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13) 1975년에서 1978년 사이, 민주 캄푸차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폴 포트(본명 살로트 사르)가 이끄는크메르 루주(Khmer Rouge: 붉은 크메르)라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자행하였다. 원리주의적 공산주의 단체인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강제노역을 하게 하거나 학살하였다. 이 단체의 핵심인 20인위원회의 회원 중 8명은 프랑스 유학파로 장폴 사르트르의 제자들이었다. 이들은 '전원화' 계획이란 미명하에 수많은 도시 지식인들을 학살했다. 이 사실을 다룬 영화 킬링필드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자 프랑스의 르 몽드를 비롯한 언론들은 이 영화를 극찬하는 기사를 1면에 대서특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