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와 하숙 생활로 보냈던 내 학창시절 제외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입이 생긴 이후 제법 많은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달셋방에서 전셋방으로 옮기는 것이 소원이었다. 달셋방만 세 번을 옮겨다녔고, 소원이던 첫 전셋방을 얻은 것이 1986년이었다. 그 당시 나와 아내는 주말부부 생활을 3년째하고 있었다. 아내가 거주했던 방도 물론 달셋방이었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그 때가 1987년 초였다. 첫 전셋방에 산지 몇 달 안되어서 일어난 일이다. 시골에서 거의 평생을 살다가 도시에 집을 사서 온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는 슬라브집 옥상에 고추를 키우기 시작했다. 매일 고추 화분에 쏟아부은 물은 내 방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집 망치니 고추를 안키웠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물이 내 방에 떨어진다는 하소연도 겸해서 했다. 그런 나에게 돌아온 답은 '내 집 내 맘대로 하는데 니가 왜 참견이냐?'였다. 저녁 무렵이었다. 그길로 나서서 홧김에 사버린 내 집(!)이 열세 평짜리 아파트였다. 뒤에 알고 보니 당시 그 도시에 있던 굴지의 농기구 회사가 통째로 다른 지방으로 이전을 하면서 많은 사원들이 함께 옮겨가게 된 상황이었고, 집을 급하게 내놓다보니 집값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내게는 운이 좋았던 셈이다.
그 집에서 6개월도 살지 못하고 나는 전근으로 인해 아내가 미리 와있던 내 고향땅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전셋집 살이를 반 년 정도하고 부도난 18평 아파트를 비교적 싼값에 샀다. 그 집에서 한 2년 살았나보다.
18평이 44평으로 키운 것은 집에 대한 나의 간이 커진 탓도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가 지은 아파트 그것도 직원용으로 꽁쳐둔 꼭대기층을 억지 부탁을 해서 내 집으로 만들었다.
그 집에서 영원히 살 줄 알았다. 아내와 나는 같은 지역에서 20여 년을 근무했다. 그 기간 동안 그 집이 말그대로 보금자리가 되었다. 아들 둘이 그 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니까. 아들이 대학을 들어가면서 서울로 부산으로 떠나고 아내는 지역연한제라는 희한한 제도로 인해 20년 가까이 근무한 지역에서 쫓겨나 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으로 발령이 나버렸다. 하는 수 없이 보금자리 집을 팔고 나와 아내의 통근 시간을 감안하여 중간간 지점으로 이사를 했다. 지어놓고도 3년이 되도록 팔리지 않는 세대가 제법 있었던 아파트를 할인을 받아 들어갔다.
도시가 한창 커가고 있던 시점이라 미분양 사태가 있었지만 이내 세대는 다 채워졌고, 인근에 병원, 식당, 슈퍼 등 근린생활시설들이 들어차서 전국 어딜 가더라도 이만한 환경을 갖춘 아파트는 많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파트 또한 튼튼하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좋은 자재를 사용해서인지 지은 지 10년을 넘긴 지금도 새집처럼 깔끔하다.
그 집에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1주일 후면 이 집에서 이사를 한다. 이사 갈 곳은 나와 나의 아내가 노후 생활을 할 곳이다.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도 했고, 아들들이 있는 서울 근처로 갈 생각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고향땅 시골은 의료 인프라가 낙후되어 있고, 서울은 노후 생활을 하기에는 새로 적응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생각을 접었다.
공기가 맑아야겠고, 자연친화적이며 산책 등 운동을 하기 좋은 곳을 찾다가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청정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편백나무 숲이 있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5~10분이면 해풍을 맞으면서 산책할 수도 있고, 편백나무 숲길을 걸을 수도 있다.
봄 한철 잠깐이긴 하지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되는 폐기차역 공원이 아파트 바로 앞에 있다.
내 생애에 마지막 집이 될 지 아니면 또 이사를 해야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은퇴한 우리 부부에게는 좋은 환경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크다.
유난히 넓은 거실에 커다란 탁자와 파스텔톤의 의자를 준비했다. 창 너머로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쐬면서 차 한잔하면서 책도 보고, 명상도 하고, 음악도 듣고... 그렇게 여유롭게 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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