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웅동을 대구 쪽이나 경남 동북부 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최근에 남해 제3지선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진영 인근의 진례에서 15분이면 족히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고속도로의 종점 인근에 진해 인터체인지가 있는데 이 부근이 진해 웅동(웅천)이고 이 일대의 마을 이름은 소사 마을과 대장동 마을이다.
소사 마을은 문학가 김달진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고, 대장동 마을은 대장동 계곡이 있어 사람들에게 친근하다.
소사 마을에 들어서면 김달진문학관과 생가가 제일 돋보인다. 특히 생가는 그 모습으로 보아 선생의 집안이 제법 세력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딴은 김달진 선생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가이고, 일찌감치서부터 신학문을 접할 수 있을 만큼의 재력이 있었던 것을 연보를 보면 알 수 있다. 김달진 선생의 제자 중에 한 분이 전 경남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지낸 신상철 교수인데, 이 분은 내 장인과 절친한 친구 사이로 모두 이 동네 출신이다.
내 장인은 신상철 교수와 함께 대학 공부를 하기로 약조하였으나 장인의 가세가 넉넉치 못해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던지 내 장인은 살아계실 때 문학에 관심이 참 많으셨다.
내 집사람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동네 아저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물건들을 탐내었고, 곧잘 '그것 쓸데 없으면 내 달라'고 손을 벌렸더라는 것. 그 아저씨가 김씨 아저씨였던 모양이다.
다음 신문에 소개된 바로 이 분이다.
이렇게 수집한 '잡동사니'들을 모아서 쌓아두었는데 이름하여 김씨박물관이다.
말이 박물관이지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그냥 창고에 재어놓았다고 해야하겠다.
테마를 두고 코너를 마련해두긴 했지만 언제까지 보전이 될런 지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거친 보존 상태.
라디오 코너에는 라디오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거의 비슷한 시대에 나온 것들인 듯하다. 중간의 가운데 있는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금성(Goldstar)라디오가 아닌가 싶다.
축음기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고, 혜은이, 남진, 트윈폴리오, 전영록 등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가수들의 음반이 추억이 되어 가고 있다.
'철동이 집에 전화 왔다. 전화 받아라!' 이장님 목소리가 쩌정쩌렁했을 확성기도 지붕에 달렸다.
여기는 만홧방. 요즘 아이들은 집에서 사라지면 십중팔구 오락실에 가있지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그 장소가 만홧방이었다.
여기는 전방이라고 불렀던, 요즘의 편의점이다.
이하의 사진은 김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물건들이다. 60~80년대를 거쳐온 사람들에게는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다.
장난감 권총, 구슬, 팽이...
스케이트 ㅋㅋ
진공관 라디오
아이스케키~
도시락(벤또), 필통, 이름표...
괘종시계
호롱불, 호야...
16비트 XT 컴퓨터와 도트 프린터기
소표분유 먹고 자란 사람들은 브르조아 ㅋㅋ.
장괘종시계의 밥(태엽)
한껏 멋을 낸 아낙들. 요즘의 처자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지만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이 모습은 그 당시의 첨단 유행이었다.
박물관 근처 벽면에는 이 동네와 진해의 작은 역사가 소개되어 있다.
소사 마을의 유래를 적어놓은 안내문인데, 이 또한 골동품이 되어가고 있다. 안타깝다.
이 집은 현재 영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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