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

벌초하러 가서

by 리치샘 2015. 9. 7.

내 고향 마을은 밀양시 무안면 웅동리 들마(야촌)이다. 벌초를 마치고 아내가 밭에서 고구마 줄기랑 정구지(부추)를 잘라와 다듬는 동안 나는 동네 어귀로 나가서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산보를 했다.


마을 앞 어룡동 쪽에서 내려오는 물(보가 있는 부분)과 곰골 쪽에서 내려오는 물(사진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 방향)이 합치는 지점이다. 경지를 정리를 해서 옛 모습은 전혀 알 수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양굴레기(양물레기?)라고 부른다. 아마도 양쪽 물이 합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사진의 오른쪽 콘크리트 옹벽이 있는 부분에서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질러 돌축대가 있어 어룡동 쪽 물길과는 제법 어른 키 한 배 반 정도 높이였다. 물이 많을 때는 폭포를 이루었던 기억이 있다. 그 밑에는 자연스럽게 웅덩이가 생겨서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의 멱감고 노는 놀이터이었다.  


양굴레기에서 관동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약물통이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바위 틈에서 물이 솟아나와서 예로부터 약물이라고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이 물이 영험이 있다고 해서 한 때는 환자 특히 나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자 동네 사람들이 개를 잡아 이 물을 막아 환자들을 못오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은 복원이 되고 물 탱크까지 마련되어 갈수기나 상수도가 고장이 나면 이 물로 식수를 대신하고 있다.    


약물통 쪽에서 본 들마(야촌) 모습.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 왼쪽의 제일 높은 봉우리가 영취산이고 오른쪽 끝은 밀양 부북면의 화악산으로 연결된다. 가운데의 둥그스럼한 산이 곰과 닮았다고 해서 웅동(熊洞)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고, 그 뒤쪽의 잘록한 능선 부분은 보름재, 그 너머는 창녕군 영산이다.


위 사진을 보다 오른쪽으로 연장시킨 파노라마 사진이다. 곰모양이라고 언급했던 야산 오른쪽으로 이쪽 가래(갈래) 저쪽 가래라고 속칭했던 골짜기를 갈라놓는 박산이 버티고 있고 박산 너머는 사명대사 생가지가 있는 가례리, 한때 수석이 유명했던 서가정 등의 동네가 있다. 지금은 야촌 오른쪽 위에 있는 곰골 동네와 저쪽 가래의 아치실이 2차선 아스팔트길로 연결되어 있다. 


밤이 제법 토실토실하다. 그너머로 양굴레기 보가 보이고 그 뒤로 산으로 통하는 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에 대해서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고자 한다.


동네 입구의 다리. 꽃이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경지 정리를 하면서 앞산과 통하던 다리를 이곳으로 옮겨세웠다. 앞서 언급했던 그 다리다. 원래는 산을 오르는 길이 사진의 오른쪽 끝 부분에 있었는데 당시 동네 이장의 파워(!)로 이곳으로 이설이 되었다. 그 덕에 이장의 가족 묘지 쪽으로 신작로가 생겼다. 

가족 묘지 위쪽으로 길이 끊어져버려, 전망 좋은 오른쪽 봉우리 매봉채와 왼쪽의 관동절 가는 길 그리고 가운데 멀리 높은 공동산(묘지) 쪽으로 갈 방법이 없어져 버렸다. 한 사람의 이기심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해버린 현장이다.


밀양시의 장수마을 사업 초창기에 지어진 장수마을 건물. 이곳의 설비는 그야말고 최신식이다. 주방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동네 사람들의 잔치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내 동생이 농사 지을 때 시청에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한발 앞선 정보를 얻어 시설한 결과물이다.


마을 회관,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 주차장에 간이 화장실까지 생겼다.


마을 공동주차장에 세워진 정자에 앉아 잠시 옛 생각에 젖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