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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통영 문화 기행(1)

by 리치샘 2025. 6. 1.

5월 15일 대학 동기들과 통영에서 만남을 갖고 온 이후 못내 아쉬움이 남아 좀더 깊이 들어가보기로 작정하고 5월 25일 아내와 함께 꼬박 하루를 통영에서 보냈다.
아래 링크의 영상을 보면 통영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v_UUO0_dbyk&t=6s



통영은 가볼 만한 곳이 참 많다. 대략 적어본 것이 다음과 같을 정도인데 하루 만에 다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 우선 순위를 매겨 돌아보기로 한다.

아침 아홉 시 출발, 통영에 열 시 도착, 두 군데를 먼저 살펴보고 그리고 점심 먹은 후 오후에 일몰 때까지 되는대로 몇 군데 더 돌아보는 걸로 작정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의 통영 나들목에서 가장 가까운 옻칠미술관부터 찾았다.
이곳은 옻칠 회화의 개척자인 고 김성수 화백의 유작과 제자 및 교류자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둘러본 곳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곳이었다. 

옻칠미술관에서 바라본 거제 방향

나전의 현란한 빛깔을 살려 섬세하게 배치해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하여 완성하는 옻칠 회화, 이 분야를 개척하고 나름의 작품 세계를 완성하여 크게 인정 받은 김성수 화백이다.
[관련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IZUwNyAaar8  


이 날은 오월답게 더없이 쾌청하고 휘파람이라도 불면서 나들이 하고픈 날씨였다.

제자들과 교류작가들의 작품이 있는 별관 전시장 앞에서


두 번째로 가본 곳은 시인 유치환의 청마문학관과 생가. 통영이 안고 있는 두 항구 중 하나인 동호항 연안에 있다.

청마문학관에 있는 '통영 르네상스'라는 제목의 안내판이다. 1945년 가을 통영의 미륵산 계곡에서 찍었다는 이 사진 한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대단하다는 표현 이외는 달리 할말이 없다.
보통 사람들도 익히 알 만한 김춘수, 윤이상, 유치환, 전혁림 등이 포함되어 있다. 모두들 통영 출신이다. 모두들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니 과연 당시 통영은 예술의 르네상스 시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이들 외에도 박경리 작가와 시조시인 김상옥의 고향이기도 하고, 백석, 정지용, 이중섭 화백 등은 통영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이 안내판에는 사진 속의 인물들에 대한 실명이 적혀 있지만 뒤에 있는 김춘수 유물전시관에는 똑같은 사진을 두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6.25 전후로 해서 북한으로 넘어간 사람들이라고 한다. 


특히 청마 유치환과 음악가 정지용, 김춘수 시인, 이 셋은 좀 각별했던 것 같다.
청마문학관에 있는 자필 편지들의 글씨체를 보고 있노라면 그 분들의 인품이 배여 있는 것 같다.

음악가 윤이상의 필체는 영혼의 자유로움이 느껴지고,  


김춘수 시인의 글씨에서는 단아함이 느껴진다.


조지훈 시인은 음악가 윤이상이 서울 성북동에 머물 때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조지훈이 작사하고 윤이상이 작곡한 대학 교가도 남아 있다. 유치환과 각별했던 윤이상, 윤이상과 교류했던 조지훈 이런 삼각관계가 청마와 지훈이 연이 닿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통영의 학교는 유치환 혹은 김춘수가 작사하고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들이 많다. 


청마의 글씨체에서 보이는 그의 인품은 한치 흐트러짐이 없는 굳건함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현란한 수사보다는 사실에 바탕한 시적 감정에 충실한 표현들이 많은 것 같다. 대표작인 깃발이 그렇고 아래의 시들도 확실히 그런 느낌을 준다.

귀고 즉 '고향으로 돌아오다'라는 제목의 시도 그렇다.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우리 고향의 선창가는 길보다 사람이 많았소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 가니
내가 큰던 돌다리와 집들이
소리 높이 창가 하고 돌아가던
저녁 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그 길을 찾아 가면
우리 집은 유약국
행이불언하시는 아버지께선 어느덧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나는 끼고 온 신간을 그림책인양 보았소


형인 극작가 유치진과 아우 유치환 형제가 태어나 자란 생가(아버지는 유약국이라는 한약방을 경영했다)의 모습이다. 사실 인근의 거제에도 유치환의 생가가 있다. 유명인을 자기 고장인으로 댕겨오려는 사람들의 욕심에서 나온 결과일 터. 이곳은 청마가 태어난 집이 아니라 자란 집이 아닌가 싶다. 어쨋든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닌 유추해서 새로 지은 티가 역력하다. 

청마 생가(유약국)
청마 생가 초담 너머로 본 통영항

[관련 영상 : 청마 유치환의 노스탤지어와 연서


청마 생가에서 나와 미륵도로 들어가서 통영해저터널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해저터널 바로 앞에 있는 맛집에서 해물뚝배기를 먹었다. 뚝배기에 가득담겨 나오는 각종 해산물들이 이채로웠고, 맛도 일품이었다.

그리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통영해저터널로 갔다.
통영의 1940년대는 음악가 윤이상의 글에도 나오듯 반반한 땅에는 일본인들이 살고, 동피랑, 서피랑같은 산비탈에는 조선 사람이 사는 형국이었던 것 같다.
사료를 보면 1920년 대까지 육지 쪽과 미륵도는 썰물이 되면 육지가 되고, 밀물이 되면 10여 미터 간격의 물이 차 아치형 돌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1931년 일제는 양안을 파 배가 내왕할 수 있도록 운하를 만들면서 동시에 양 쪽에 물막이를 해놓고 해저 10미터까지 파고는 그곳에 터널 형식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했다. 그것이 지금의 통영 해저터널로 남아 있다.

겨우 차 한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지만 당시에는 차와 사람이 함께 왕래했고, 지금은 인도로만 이용되고 있다.

입구에 적혀 있는 '용문달양'이라는 현액은 용문 즉 이 해저터널이 햇빛(산양면)에 이른다는 표면적 의미로 읽히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 해저터널의 양쪽 출구가 모두 동쪽을 향해 있으며, 이는 저 멀리 태양의 나라인 일본(日本)으로 그 밝음이 이어진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참고 : https://www.minjok.or.kr/archives/141531  

용문달양의 진짜 의미를 알고 나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애자에 엮여있는 전깃줄이 생경스럽다.
이런 모습은 흑백으로 처리해야 제맛이다. 


해저터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통영이 낳은 한국의 대표적 현대화가 전혁림과 그의 아들 전영근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전혁림미술관을 찾았다.
화가 전혁림은 한국의 피카소로 불릴 정도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별히 그의 그림을 높이 사 청와대에 그의 작품 '통영항'을 구입하여 건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작품이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https://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153797).

미술관 전체를 전혁림, 영근 부자의 작품을 새겨 만든 타일로 덮어놓았는데, 복잡하고 어지러운듯하면서도 예술적 풍미를 한껏 내뿜는 치장을 하고 있었다. 

[관련 영상 : 통영이 낳은 바다의 화가 전혁림 / KBS]

김춘수 유물전시관, 윤이상 기념관, 서피랑에 관한 내용은 다음 포스트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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