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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미얀마

미얀마 역사 공부 #04 - 신발 벗기와 나라의 운명

by 리치샘 2021. 7. 31.

이번 글에서는 국가의 운명이 갈라져버린 버마(미얀마)와 태국의 전통에 대한 관념의 차이점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필자의 짧은 역사 지식과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지금도 미얀마를 방문하면 각별히 조심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사원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점이 있다.
신발 벗기는 이방인으로서는 솔직히 고행이다. 더운 날씨에 데워진 시멘트 바닥이나 대리석 바닥을 맨발로 걷는 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자국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신발벗기는 신성한 존재에 대한 예우와 존경의 차원인 것은 말할 것이 없다.

맨발의 쉐다곤 사원 방문자. 이미지 출처:https://blog.naver.com/yarndye/221408337765

 

미얀마와 인근 태국은 이 신발벗기의 차이로 나라의 운명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미얀마의 경우를 보자.
버마 왕조의 마지막 왕의 선왕인 민돈 왕(1853~1878년 재위) 시절, 1차 영국-버마 전쟁(1824~1826)을 겪고 난 뒤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매우 악화된 상황에서 영국은 인도 총독 더글라스 포시트(Douglas Forsythe) 경을 미얀마에 파견하게 된다. 그는 만달레이 왕국에서 신발을 벗고 민돈 왕을 알현했다. 식민지 총독부가 있던 콜카타(캘커타)로 돌아온 포시트 경은 신발을 벗은 데 대하여 불평을 쏟아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서양인들은 침대에 들기 전에 신발을 벗고 자고(아예 신발을 신고 침대에 눕는 경우도 있다) 일어나 신발을 신는다. 그런 그들이 대낮에 신발을 벗는 행동이 얼마나 어색했을까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후 영국 식민 정부는 사신을 포함하여 영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신발을 신은 채로 미얀마 국왕을 만날 수 있다고 발표한다. 그 결정을 전해들은 민돈 왕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신발을 벗지 않고 자신 앞에 선다는 것은 곧 자신의 권위 즉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만약 허용한다면 왕으로서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다. 백성들 앞에 '내가 왕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왕권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민돈 왕은 그러한 영국 정부의 통보를 거절했다. 이후 양국은 모든 대화가 단절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85년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태국의 경우는 어떤가?
태국은 지리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통칭 인도차이나 반도는 프랑스가 식민 지배를 했던 지금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지칭한다. 미얀마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앞서 말한대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중국과의 교역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미얀마의 양곤에서 에와야디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만달레이를 거쳐 중국 남부 윈난(운남성)으로 연결을 꽤했고, 프랑스는 베트남의 통킹 만에서 중국의 윈난성 쿤밍으로 통하는 소위 인도차이나 로드를 개척함과 동시에 메콩강을 이용한 교역로와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두 나라는 라이벌 관계에서 적으로 발전해갔다. 이 두 나라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았던 곳이 바로 태국이었다.
영국은 태국과의 관계를 트기 위해 1822년 동인도 회사 사신 존 크로퍼드(John Crawfurd)를 방콕에 파견했다. 그는 신발을 벗고 태국 궁왕을 알현했다. 그후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던 몽꿋(Mongkut, 1851~1868 재위)왕 즉, 라마 4세는 1855년 영국 사신 존 보링(John Bowring)이 왔을 때 신발은 물론 칼까지 찬 채 왕을 알현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러한 융통성 있는 외교 자세는 태국의 식민지화를 막았고, 서양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의 태국이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되는데 일조했다고 할 것이다.

미얀마와 태국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처럼 껄끄러운 면이 있다고 한다. 현재의 불교 종주국을 두고 두 나라는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다. 태국은 미얀마더러 유적이 있으면 뭐하느냐 다 쓰러져 가는데 라고 하고, 미얀마는 불경을 정리한 나라는 자기 나라라면서 태국에게 장사 속으로 불교 유적을 이용해먹는다고 핀잔한다.
미얀마는 옛 것을 잘 보존하고 있고, 유물 뿐 아니라 전통적인 예절 또한 유지하고 있음을 자랑한다. 태국은 미얀마를 가난한 나라라고 얕잡아 본다.
  
전통과 관습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국운과 관계가 있음을 이 두 나라의 사례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