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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하늘에서 본 밀양 - 상동면 도곡리 윗뒤실, 아랫뒤실, 솔방마을

by 리치샘 2017. 8. 23.

먼저 밀양지명고에 소개된 도곡리 개요를 살펴보자.


도곡리(道谷里, 뒤실, 後谷)  

    북으로 소천보(小天普), 동남(東南)으로 도덕봉(道德峰) 사이에 있는 비교적 표고가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산간(山間) 동리(洞里)이다. 동쪽으로 용암봉(龍岩峰)을 사이에 두고 산내면(山內面) 용전리(龍田里)와 경계를 이루었고, 서쪽으로는 고정리(高亭里)와 이웃했다. 남쪽으로 중산(中山)과 다실재를 경계로 하여 산외면(山外面)과 연접하였고, 북쪽으로는 소천봉을 분수령(分水嶺)으로 하여 신곡리(新谷里)와 경계를 이루었는데, 사방으로 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다. 동리(洞里)의 이름은 본래 뒷실이라 했는데 이는 신라시대(新羅時代) 때 도악현(島岳縣)에 딸렸던 오곡(烏谷)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곧 오곡(烏谷) 뒤쪽에 있는 골짜기라 하여 뒷실(後谷)이라 했는데, 당시에는 이곳 일대가 오악현(烏岳縣)의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그 후 뒷실이 도실로 변음되고, 다시 도곡(道谷)으로 표기된 것이 현재의 지명이다. 또 마을 동쪽에 있는 도덕령(道德嶺) 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라 하여 도곡(道谷)이라 했다는 말이 있고,고갯길에 이른 산길이 멀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다른 일설도 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이래 도곡리(道谷里)로서 법정(法定)리가 되었으며, 현재는 뒷뒤실(上道谷), 아랫뒤실(下道谷, 솔방(松坊)등 세 자연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http://cafe.daum.net/my-multi/UAUt/97

     

밀양에 살면서 처음으로 가보는 동네 중 하나. 한 보름 전에 상동면을 드론으로 촬영할 때도 빠뜨리고 넘어가버린 동네, 도곡리를 드론 들고 다시 찾아간다.

도곡저수지 바로 위에 있는 아랫뒤실(하도곡) 초입에 있는 민가들이다. 몇 채 안되는 새 집들은 전원 주택들로 보인다.


아랫뒤실(하도곡)마을, 마을회관 이름은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촌노들은 아랫뒤실로 부를 것 같다.


아랫뒤실에서 본 윗뒤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의 능선이 낮게보인다. 사진에서 바로 보이는 쪽으로 넘어가면 산내면 용전리로, 왼쪽은 상동면 신곡리, 오른쪽으로는 산외면 희곡리와 통한다.


아랫뒤실 상공에서 올라오든 길을 뒤돌아본 모습. 도곡저수지가 보이고 고정리가 살짝 들어와 있다.


저멀리로 보이는 능선과 그 아래쪽에 있는 마을들은 경북 청도군에 속하는 지역이다.


다시 도곡 골짜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문득 산 정상 쪽에 작은 마을이 하나 들어오는데, 이 동네 이름이 솔방이다.(사진의 왼쪽 위 모서리)
솔방 마을, 상도곡, 하도곡 세 마을이 행정구역상 도곡리에 속한다.


윗뒤실(상도곡) 마을의 정점에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같이 살자고 지은 집들로 보이는 몇 채의 집들이 모여 있다.
드론 촬영을 하면서 실감한 사실이지만, 시골 마을 중에서도 한적한 곳에는 어김없이 전원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평생 도회지 생활에 멍이 든 사람들이 사람을 피해서, 번잡함을 피해서 한적하고 외딴 곳에 집을 마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부동산업자들이 소위 기획부동산 사업을 해서 팔아먹은 집이 의외로 많다.
사람은 모름지기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데 외딴 곳에서 절간처럼 집을 지어놓고 도를 닦겠다는 것처럼 보여서 일면 안타까운 점도 없지 않다. 이러다가 베이비붐 세대가 봇물 터지듯이 은퇴를 해서 귀촌을 하면 명상가 내지는 도술인들이 넘쳐나지 않을까 염려된다.


윗뒤실(상도곡) 마을의 모습.


윗뒤실에서 아랫뒤실쪽으로 본 모습.

솔방 마을.
도곡저수지에서 아래뒤실로 올라가다 왼쪽으로 빠지면 가파르고 험한 솔방가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예전에 이곳을 내왕하려면 주로 걷는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찻길도 험난한 이 길을 짐이라고 지고 다녔다면 어찌 다녔을까?


잘 만들어놓은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서 드론을 띄웠다.
뒤의 산은 작은 하늘산이란 의미의 소천봉. 솔방이라는 말은 밀양에서는 모조리 다, 전부다 라는 뜻을 가지고 방언인데 임진왜란을 비롯해 나라에 난리가 났을 때 이곳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솔방'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제아무리 독한 외적인 들 걸어서 한 나절은 족히 걸리고, 당도하자마자 기진맥진할 이곳까지 무슨 용기로 기어올라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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