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 대한 인상 |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해서 바깥으로 나왔다. 북경의 첫인상은 황량함! 여행의 종점까지 가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인상은 국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극도의 황량함이었다. 북경은 희뿌연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저녁에 왠 안개인가 했더니 동행했던 여행사 사장님은 안개가 아니라 매연이란다. 연탄 가스 같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건 또 왠 냄새인가 했더니 이곳 공장들이 연료로 석탄을 쓰기 때문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우리나라의 60년대나 70년대 초반을 연상케 했다. 토지의 황량함에서 생기는 먼지, 거기다가 석탄 매연, 또 무시할 수 없는 차량 매연, 덧보태어 안개.... 기온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차갑지 않았다. 위도상으로는 우리 나라보다는 훨씬 위에 있는 도시이기에 영하 20도 이상은 되리라고 예상을 했었는데 의외를 천기는 온순했다. 영어로 일본어로 또 한글로 쓴 팻말을 든 사람들이 출구에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이 현지 안내인들이었다. 우리 여행을 주선했던 여행사 팻말이 보였다. 검은 잠바차림의 자그마한 한국인이었다. 첫마디로 억센 억양의 북한말투가 튀어나왔다. 아! 조선족이구나라는 짐작이 갔다. 공항 주차장으로 안내된 우리 일행은 조그마한 마이크로버스로 인도되었다. 10여년 이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미니버스, 일본제였다. 인체공학과는 전혀 거리가 먼 딱딱한 비닐 의자 16개가 들어차 있는 이 버스가 북경 기행의 발이 되었다. 운전사는 한족인 모양이었다. 저녁 시간대라 바로 직행한 곳이 북경 시내의 한식집, 먼지나고 오물들이 길 바닥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골목길을 들어서니 반가운 한글 간판이 달린 음식점이 나타났다. 아리랑 식당이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아가씨 총각들이 줄줄이 나와 우리 말로 인사를 한다. 외국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마음은 푸근했다. 김치찌개가 마련되어 있었다. 국내의 맛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음식을 먹으면서 하이트 맥주 한 잔씩 곁들었다. 하이트 맥주라니?? 우리에게 있는 건 거기도 있었다. 음식은 푸짐했다. 그런데 그걸 나르는 아가씨들을 자세히 보니 좀 수상했다. 한결같이 앳띤 얼굴들, 20대 초반쯤되어 보이는 순박하기 짝이 없는 산골처녀들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입고 있는 한복은 바느질 실밥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남루했다. 한복이라는 겉모습만 차렸을 뿐이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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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우리는 호텔로 갔다. 숙소는 곤륜 반점. 호텔을 반점으로 쓰는 모양이다. 곤륜반점( 崑崙飯店)! 한자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28층짜리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건물에 우리가 짜장면 집을 일컫는 '반점'이라니? 중국에서는 호텔을 반점이라고 한단다. 용어가 우리하고는 사뭇 달라서 어리둥절했다. 1년 이상 기행문을 방치해두고 쓰자니 세세한 낱말들의 차이점을 모두 잊어버렸다. 어쨋건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러나 거리를 지나오면서 마주치는 간판들은 중국이 서방 물결을 많이도 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곳곳에 영어로된 네온사인들이 즐비했고, 그 가운데는 우리의 대우, 삼성, LG등도 당당하게 끼어 있었다. 특히 공항청사내의 짐수레, TV, 자판기 등등은 국내 제품 일색이었다. 호텔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중앙 로비는 일반 건물 4,5층 정도를 아예 틔워서 벽면과 천정을 장식해 놓았고, 방안의 시설은 우리나라의 특급 호텔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자재들이 중국산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색다르긴 했지만. 예로 엘리베이터, TV, 세면대 등은 모두 외제, 그것도 일제 투성이였다. 호텔에서의 식사는 서양식이었다. 흔히 접하는 부페식,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대충 먹고는 바깥이 궁금했다. 거리는 이미 암흑 천지! 중국은 저녁 5시만 되면 모든 일이 취침으로 든단다. 상점은 문닫고 회사는 퇴근, 관공서도 말할 것 없단다. 저녁 8시쯤, 거리는 적막했다. 왕복 10차선의 운동장 같은 도로를 가로질러 골목으로 들어섰다. 컴컴했다. 차가운 바람이 한 웅큼 지나가면 종이나 비닐들이 나불대며 길바닥에서 춤을 출뿐, 메밀꽃 필무렵의 파장을 연상케 했다. 왜 오래전에 우리 시골의 조그마한 동네 전방(가게)에 가면 외상사절을 비롯하여 각종 상품 스티커가 문종이에다 개발새발 그려서 붙여두던 풍경 있지 않은가? 그 이상도 아니요,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마면 사람이 나타날까 골목을 기웃거리며 몇 모퉁이를 지나갔지만 가게는 문을 꽁꽁 닫았고, 이따금 거리를 질주하는 차량들 뿐이었다. 그렇게 몇 킬로를 걸었을거다. 과일 행상이 나타났다. 남루한 아파트 건물 담벼락에 옹기종기 과일들을 혹은 바구니에 혹은 상자채로 놓고 파는 행상이 두어 군데가 나타난 것이다. 흥정이 시작되었다. 말이 통하질 않는다. 중국어를 좀 배워둘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하면 한자로 필담이라도 할 요량이었지만, 메모지도 필기구도 준비해 있지를 않았다. 우리나라의 과일들하고는 사뭇 생김새가 다른 과일들이 몇 종류 있어 그것을 시식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강하게 일어났다. 한 10분이나 머뭇거리고 또 한 10분이나 영어로 말을 걸었으나 알지못할 말로 찌끌이면서 손가락질과 계산기만 뺏다 넣었다 할 뿐. 그러고 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 양반은 유창한 영어를 입에서 뱉어냈다. 우리가 사먹고 싶어했던 과일은 1관에 3천원 정도라고 했다. 그리 비싸지 않다는 생각에서 가볍게 값을 치루었다. 그런데 그게 바가지였을 줄이야. 어쨋든 즐거운 마음으로 과일 봉지 몇 개를 들고 호텔로 돌아올 참이었다. 황량한 바람이 스쳐지나 가는 골목길을 돌아가는데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어린아이 하나가 뽕 나타났다. 형용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남루한 차림이었다. 손은 떼가 덕지덕지 붙어서 손등이 갈라져 있었고 세수는 안한지가 몇년은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였다. 이 아이는 막무가내로 바지가랭이를 붙들고 뭔가를 내놓으라는 거였다. 거지였다. 어린 나이에 저 모양이다 싶어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동행하던 이종화씨는 호주머니에서 위엔화 지폐를 꺼내어 그 중 한 장을 어린 거지에게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번에도 전광석화와도 같이 두 식구분의 거지떼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바지가랑이와 손, 하여간 붙들 수 있는 건 다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다. 이쯤되면 36계가 최선책이다 싶어 우리 부부는 내빼기 시작했다. 500미터 이상을 질주하여 뒤돌아보니 이종화씨 부부는 거지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끈질긴 애원(?)에 그들 부부는 두당 10위엔 즉 우리 돈으로 1000원짜리 지폐들을 강탈당하고 풀려날 수 있었다. 황량한 거리와는 달리 호텔 근처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외국인을 위한 상행위는 제한 시간이 없단다. 거기에는 쇼핑 센타도 있었고, 각종 토산품 가게들도 즐비했다. 구경만 하고 지나가다가 음식점이 눈앞에 나타났다. 벽면에는 설렁탕이니 갈비탕이니 하는 한글도 적혀 있었다. 술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메뉴판을 보니 온통 낯설은 음식들 뿐, 손짓발짓 동원해서 음식을 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옆에 앉은 먼저 온 손님들이 싱긋이 웃고 있었다. '양꼬지하고 북경주 한 번 드셔보십시오' 한다. 우리 나라 사람이었다. 그 반가움이란! 그들은 북경에 진출해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가씨 한 사람하고 남자 둘, 그들 세 사람은 북경에 온지 석달쯤 되었단다. 컴퓨터를 이용한 고급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모양이었다. 우선은 컴퓨터 문화가 낙후되어 있어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구하기가 쉽지않고 하드웨어 고장이 나면 A/S가 골치 아프단다. 왜 A/S를 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식이 아예 없다고 한다. 양꼬지는 역했다. 특유의 양념이 문제였다. 향료라고 하는데 노린내가 코를 찔러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한 입 넣다가 다시 향료를 훑어내고 구워먹었다. 술은 독했다. 고량주 계통이었는데 인테리어 사업가는 중국술이 다 그렇다고 한다. 빨리 취했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12시가 넘어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로비에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갔던 동향 사람들이 이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로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사 가지고 간 과일을 자랑스럽게 내어놓으면서 드셔보시라고 권했다. 그런데 여행사 사장님은 대뜸 그거 바가지 썼겠네요 한다. 우리 돈으로 합계 만원 정도를 줬다고 하니 실제 가격은 천원이란다.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사란다. 10배 바가지는 보통이고, 깎을 기세가 보이지 않으면 30배 바가지도 예사로 씌운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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