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퇴직 이후 6개월 여 동안 나의 직업은 무직이었다. 퇴직을 했으니 무직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부가 나의 평온한 퇴직 후 여생에 시비를 걸고 나왔다. 일정액 이상의 연금을 받는 이도 의료보험비를 개별적으로 내라는 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청춘부터 내 인생을 모두 걸고 살아오면서 봉급 몇 푼 받으면서 동시에 그 봉급에서 일정액을 떼어 불입한 연금, 그걸 퇴직 후에 받자니 이상한 논리로 내 연금을 갉아가려는 것이다.
그래서 소농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의료보험비 감면 혜택이 있다고 해서다. 농토야 어차피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농부가 될 만큼 있기에 그걸 기반으로 농업경영체로 등록을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몰랐던 등기부 등본의 오류와 마주치게 되었고, 근 한 달이 넘게 씨름한 끝에 바로 잡기도 했다. 어쨋든 10월 초에 농업경영체로 등록되어 새로운 직업으로 농부라는 걸 얻게 되었다.
사실 내 고향에는 제법되는 논과 소일거리 이상의 밭이며 산이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그야말로 피땀흘려 일구어놓으신 것들이다. 하지만 실속은 없다. 농사에 뛰어들었던 동생이 이런 저런 연유로 대부분의 논을 저당잡혀 대출을 했다가 갚지를 못해서 이미 소유권은 채권을 가진 은행 등 회사에 넘어간 상태다. 그러나 그 기관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형편이므로 아직은 원소유권자인 우리에게 더 정확히는 우리 어머니에게 경작권을 인정해주고 있는 상태다. 소유권이 넘어간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형제들은 그 논에 대한 아무런 권리 행사를 할 엄두를 못낸다. 하지만 평생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오신 어머니는 아니다.
어머니의 욕심은 대단하다. 욕심이라기보다는 우리 6남매를 키워온 삶의 방식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논 뿐만 아니라 논두렁, 논 언저리의 언덕 등 한뼘이라도 흙이 보이는 땅에는 죄다 작물을 심어놓으셨다.
아래 사진의 땅은 오른 쪽에 논이 있고 왼쪽 물통 부근은 도로인데, 그 언저리가 제법 가파른 언덕으로 된 짜투리 땅이다. 이곳에 산초며 대추 나무를 심고, 거기다가 들깨를 심으셨다.
가파르고 척박한 땅을 기어 오르내리면서 잡초를 호미로 매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길러 작물을 키워내셨다. 그 결과로 팔순의 나의 어머니는 손목 관절염과 등쪽 인대가 끊어지는 병을 얻으셨다.
나는 결심했다. 발병을 계기로 어머니를 농사일에서 이젠 완전히 손을 떼게 하려고 말이다. 추수철이 다가오면서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 같은 증세를 보여 막내 여동생과 병원에 근무하는 여동생에게 바톤을 넘기면서 거의 강제로 입원을 시켰다. 그렇게 3주가 지났다.
그리고 어머니가 저질러 놓은 농사일의 설거지는 내 몫이 되었다. 의료보험비 절약차원으로 얻은 새 직업인 농부가 명실상부하게 되어 버렸다.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기간의 거의 절반을 나는 어머니가 일구어놓은 밭으로 논으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내 생에 여태껏 해보지 않았던 혹독한 단순 노동을 해오고 있다.
첫 과제로 떨어진 들깨 수확은 2주 간에 걸쳐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베고, 말리고, 두드려 마무리를 지었다. 그 다음 과제는 팥 수확. 팥은 비교적 단단한 결과물을 주기에 다소 빨리 수확을 해도 말리면 되므로 일단 베어서 길 언저리에 말리면서 일부는 수확을 한 상태다. 낫으로 베자니 뿌리째 뽑혀 전지 가위로 일일이 잘랐다.
농사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않는 퇴직한 친구를 데려가 팥 타작을 거들어달라고 했었는데 ㅋㅋ 이 친구 20분 작업에 몸살했단다.
감나무가 집이며 밭 가장자리에 제법 있다. 대봉감이 많긴 하지만 지질구레한 감도 없지 않다. 팥 수확하는 도중에 감도 땄다. 산초도 눈길이 가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잎사귀가 파랬던 콩도 어느 사이 누렇게 변하고, 대공이가 벌어지면서 알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 역시 전지 가위로 일일이 잘랐다.
자른 놈은 말려야 한다. 동네 사람들이 말리기 좋은 요지의 길을 다 차지해버려 논두렁 언저리에 비닐을 펴고 자리를 잡았다.
이 일을 어젯밤 시골집에서 자고, 오늘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에 했다. 엊저녁은 사발면 한 그릇과 막걸리 몇 잔으로 끼니를 떼우고 오늘 아침 빵 한 조각 먹고 시작한 일이다.
점심 때가 되자 작은 어머니가 애절한 구원을 요청하신다. 며칠 전에 타작을 해서 말려놓은 나락을 거두어들여야 하는데 도와달라고 하신다. 말린다고 늘어놓은 것을 퍼담는 것은 당신들 내외분이 하신단다. 그럼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경운기에 싣고, 집의 광에 쌓는 일이다.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다. 사실 나는 이 일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겁나는 일이다. 위험하기 보다는 힘이 드는 일이라서 겁나는 거다.
얼추 40푸대 정도를 때로는 들고, 때로는 등짐을 져서 옮겼다.
대저 농부란 아직 몸이 자산이다. 기계가 대신해주는 부분이 늘어나긴 했지만 내가 어머니 없는 거의 한 달을 어머니 대신 한 일은 기계의 힘을 빌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 몸으로 부대끼며 해낸 일이다.
나는 어머니가 밉다. 땅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착과 그 애착의 결과로 벌려놓은 엄청난 작물들, 가지수도 많고 양도 자급자족의 정도는 벗어난 듯 보이는 결실들은 거두어들이면서 내 심정은 정도를 벗어난 어머니의 욕심에 미운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몇 십 만원 어치도 안되는 수익을 바라고 새벽부터 밤까지 몸을 던져 일하시다가 결국에는 몇 백만 원을 병원에 갖다주고 마는 미련덩어리인 나의 어머니.
그리고 여태 해보지 않았던 막노동으로 어머니의 일을 수습하고 있는 사실이 나에게는 엄청나게 억울하고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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