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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절과 신도

by 리치샘 2017. 5. 15.

4월 초파일. 나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내 고향 곰골 가까이 있는 대법사(구 표충사라고도 함)에 간다.

나 스스로도 우스갯소리로 가끔 이야기하곤 하지만 나는 '초파일 신도'다. 사월초파일 외는 절에 잘 안가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중적인 명승지는 대부분 절이므로 그 명승지에 가서 절과 마닥뜨리면 부처님게 삼배하는 정도는 한다. 그러나 불경 하나 제대로 암송하는 것이 없고,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깊이 새기거나 깨우친 바도 없으니 초파일 신도를 벗어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나는 절을 사랑한다. 특히 대법사를 아낀다. 그것도 마음 뿐이지만, 이 절은 나와 내 가족과의 깊은 인연이 있어 이 절을 내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절의 노스님은 연세가 올해로 아흔 넷이다. 아직 살아계시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노스님은 젊은 시절 아랫 동네인 우리 마을에 종종 걸음을 하셨고, 그 때마다 어김없이 우리 집에 들러 가끔 공양도 드시고 가셨다. 나의 할머니는 스님이 달도 없는 그믐밤에도 산길을 바람같이 다니셨다면서 그것은 신통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계셨다.

나는 어릴 적에 소먹이러 가면 이 절까지 가서 마당밭의 토마토, 참외를 서리해 먹거나 지금 요사채 뒷편 언덕에서 나왔던 쇠붙이 맛이 나는 흙을 파먹던 일, 그리고 개울에서 가제를 잡아 사명대사가 심었다는 모과나무(지금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아래에서 구워먹던 일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이런 어린아이 장난이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정면으로 위배되는 악동짓이었지만 그땐 그게 재미있었다. 당시의 절은 마치 재실과 같은 구조이었고 스님은 절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이런 악동짓을 하다 한날은 절지기에게 들켜 혼이 났던 기억도 있다.

후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이 되어 이 절에 그야말로 오랫만에 찾았을 때에 스님은 내 어릴 때의 이름인 명희를 명쾌히 기억하고 계시었던 사실에 경악하기도 했다. 스님은 타지로 돌면서 절과 관련된 행정적인 일에 몰두 하시다가 지역 국회의원, 밀양시군청 관계자 및 조계종 실력파들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 기어이 이 절을 사명대사의 유적지로 지정되게 하여 크게 중건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 절을 묵묵히 지켜왔던 비구니 스님이 절의 살림을 맡아서 큰 일들을 잘 치루어내셨다. 

비구니 스님 또한 우리 집안과는 각별한 관계가 있었고, 할머니에 이어 어머니가 빠지지 않고 시주를 하시고 행사에 참석하셨다.

그러한 인연을 나와 내 아내가 대물림한 셈이어서 이 절은 나에게 각별한 것이다.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천도제 또한 이 절에서 지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해마다 이 절의 신도가 줄고 있다. 초파일 연등의 수가 10여 년 전에 비해 절반의 절반도 안된다. 아주 가끔씩 평일에 절에 가보면 그먀말로 적막강산이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헤아려본 즉, 가장 큰 이유는 주지 스님의 소유욕과 물욕이라고 본다.
한 예로 스님은 시주를 받을 때 꼭 사주팔자 점괘를 들먹인다. 누구에게 삼재가 들었으니 등을 켜야 한다, 기도를 올려야 한다는 식이다. 물론 시주액수는 그때그때마다 나의 반응을 봐가면서 유동적으로 매긴다. 그렇게해서 일년에 나는 적지 않은 금액을 시주한다. 이 종각을 짓고, 종불사를 할 때도 제법 큰 돈을 시주했다.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대들보에 붙여놓은 동판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 뿐이지만.

그리고 연말이 되면 나는 늘 아쉬운 소리를 스님에게 해야 한다. 시주를 하였으니 연말정산용으로 서류를 좀 만들어달라고. 그 때마다 한 번에 해주신 적이 없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은 아예 서류 요청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우는 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소위 절 모르고 시주해왔다고 느낀 많은 신도들이 점점 발길을 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최고의 학교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다. 어떠한 귀천도 있어서는 안되는 곳이다. 부처님의 권세를 이용하여 사람을 성가시게 하고, 정신적, 물리적 압력을 가한다면 그 또한 절의 존재가치와 상반되는 일이다.

신도가 줄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 절이 가지는 호국적인 가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랑스러워야 할 유적에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이 절의 존립 이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절이 개인의 업적을 논하고 어느 스님의 공덕을 논하기 전에 호국 성지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나의 시골집 담벼락, 새로 깐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난초를 보면서 순리는 왜곡시킬 수 없음을 확인한다.


2017년 사월초파일 대법사 360도 파노라마 사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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