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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면서

비전문이 전문을 이긴다

by 리치샘 2017. 4. 10.

지금은 특성화 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이전의 이름은 전문계 고등학교였다. 그 이전에는 실업계 고등학교이었고.

나는 특성화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여기서 컴퓨터 과목을 가르치고 주로 컴퓨터와 관련된 업무를 해오고 있다. 컴퓨터 관련 업무는 일반 학교에서는 교육정보부라는 부서에서 한다. 교육정보부라는 부서가 생기고 난 뒤 지금까지 거의 1-2년을 빼고 그 일을 하고 있다. 햇수로 이제 25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또 내 입지가 좁아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말을 듣는다. 

어느 선생님 말이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컴퓨터가 이렇게 후져서야...'. 하는 말.

메모리 카드가 자신이 쓰는 컴퓨터에서 인식이 잘 되지 않으니까 지극히 자연스럽게 내뱉은 말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말까지 보탠다. '안되면 안하면 되지 뭐!'. 이 말은 컴퓨터가 후져서 잘 안되니 자기 업무를 처리하지 않겠다. 자기 잘못이 아니고 컴퓨터 나아가 컴퓨터 관리하는 부서의 책임이다 라는 식이다. 염장을 지르는 말씀이다.

컴퓨터는 필기구와 같은 도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똑같은 볼펜을 구입해 사용하더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서 망가질 수도, 잉크가 빨리 닳을 수도 있다. 그건 대부분 쓰는 사람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날 한시에 구입했으니 한날 한시에 고장이 나야 한다는 식이다. 대단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물건의 고장 여부는 그 물건을 쓰는 사람에게 달렸다. 특히 컴퓨터와 같은 복잡한 기기는 사용자의 능력에 많이 좌우된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억지로 쓰는 것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생기게 된다. 심지어 이삼십 년 어치 자료를 컴퓨터 한 대에 넣어두고 쓰다가 어느 날 악성 바이러스에 걸려 완전히 날려버린(절대 복구 불능 상태) 사람도 있었다. 컴퓨터 활용 능력을 키우라고 그렇게 자극을 줘도 꿈쩍하지 않던 사람이다. 스스로 자초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을 설명해야 할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선생님과 같은 비전문가가 교육정보부 일을 맡고 있는 사람보다 학교에는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학생부니 교무부, 연구부 등의 부서와는 달리 교육정보부는 맡는 사람이 늘 맡는 일종의 전문부서로 일하는 사람이 거의 정해져 있다. 

따라서 교육정보부원은 늘 소수이며, 다수의 비전문인들로부터 매도를 당하는 일이 많다. '건방지다'부터 '게으르다' 심지어는 '잘 알지도 모르는 것이 아는 체한다' 까지. 궂은 일은 일대로 하고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여 3D 업무라는 이야기가 일반화된 지 오래다. 그래서 이 부서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보편화된 지도 오래고. 

하소연 할 곳이라고는 같은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 뿐인데, 그마저 1990~2000년대 교육정보부 초창기보다는 관심있는 교사들이 현저히 줄었고 활성화되었던 연구 혹은 동호회 모임도 거의 사라졌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컴퓨터를 꽤 잘 다룬다.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로 말이다. 자라면서 컴퓨터를 늘 접하면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컴퓨터를 업무를 좀처럼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댓가를 제대로 얻지 못하는 3D 업무라는 사실을 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어 미리부터 알고도 모르는 척하기도 한다.

잘 모르는 이를 위해 헌신(실제로 건강을 해치거나 심지어 과로 등으로 죽은 이도 제법 있다)하던 세대는 나까지인 것 같다.

서울 안가본 사람과 가본 사람이 싸우면 안가본 사람이 이긴다는 30년도 더 된 옛말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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