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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아침을 열며

by 리치샘 2014. 6. 26.

월요일, 아침을 연다.
출근하자마자 복도의 창문을 연다. 옥상 바로 밑의 층은 아침부터 덥다. 데워진 옥상 아래의 실내 공기는 새벽 찬 공기도 식히지 못하는가 보다.

실내 공기가 제대로 환기도 되기 전에 컴퓨터를 켠다. 이 일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므로.


오늘 아침에 만난 바탕화면 그림이다. 


커피가 무조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크림이 잔뜩 들어간 이런 커피를 애음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커피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시지 않는다.
입맛이 바뀌었다. 맛에 대한 감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 성분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선호도가 바뀐 것이다. 요즘 몸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예전 같지 않아서이다.
서둘러 다른 그림으로 바꾼다.


지구 연대기 그림을 어느 외국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해서 틈틈이 한글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바탕화면에 저장되어 있다.
이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인간이 살다가는 100년 안되는 세월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이 그림 속에 있는 조개 껍데기가 차지하는 공간만큼의 세월은 사람의 한 평생에 수천, 수만 갑절도 되고 남을 터.


지난 주는 주말에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6월 20일 금요일 서울 행차를 했다. 차를 밀양에 대고 아내와 저녁 기차를 탔다.

21일 토요일, 봉천동 집 상황 살펴보고, 반지하방의 물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옥상에는 빗물이 고여 벌레가 생겨 있고. 약간의 손질에도 서너 시간이 걸렸다. 저녁에는 장차의 사돈 내외와 아들 내외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다. 30살짜리 독한 양주 한 병을 다 비웠다. 바깥사돈이 동갑내기라 그런지 마음의 벽이 없다.

일요일 낮에는 아들의 결혼식장을 찾아 다른 이의 결혼식을 참관했다. 예약된 식사에 대한 시식 기회도 가졌다.

호텔을 나와서 종로에 있는 한복 가게로 가서 한복 한벌씩 맞추었다. 아들도 그렇고 며느리될 아이도 나이가 있어서인지 준비 과정을 한발 앞서 미리 챙겨놓아 별 무리가 없다.

그런 와중에 일요일 새벽, 작은 고모님이 세상을 떠났다. 몇 년 동안 하나 남은 고종 형과 연락이 두절되어 고모님과도 소식이 닿지 않은 상태였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고종 형은 그 형제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능력보다는 쓰임새의 통이 컸던 것 같다. 고모님은 당신의 남편을 급성 식중독으로 제일 먼저, 그리고 작은 아들은 인생고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절명, 고명 딸은 혈액암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셨다. 속이 문드러지는 아픔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살아오신 모습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대단하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이면에 숨겨진 깊디깊은 한에 한없는 연민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폰에 저장된 사진을 클라우드로 올린다. 오늘 올린 사진 중 한 장, 결혼식장 사진이 있다.


어머니는 감기를 오래 묵혀 밀양병원에서 1주일 입원하고 지난 주말에 동생이 근무하는 진주의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감기로 인한 병은 이미 거의 완쾌된 상태, 심장이 문제다. 옮긴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있는 상태가 아님을 형제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마음만은 안심이 덜 되는 구석이 있어서 부산의 큰 여동생이 일반 버스로 모시고 갔다. 그리고 어제 25일 수요일 퇴원을 하셨다.
심장 기능이 아주 많이 약화된 몸에도 아랑곳 않고 농사일에 매달리다가 감기를 이기지 못하고 폐에 물이 차고, 귀에 물이 고이는 지경까지 간 것이다. 어쨋든 이번에도 제법 많은 돈을 병원에 갖다바쳤다. 
말려도 안되는 농사일이다. 아파트에 와서 같이 살자해도 감옥살이라고 마다하신다. 참 안타깝고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