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대가 아직도 노래방에 간다면 그 사람은 정신나간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노래방 문화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는 반증이다. 한편으론 우스갯소리로 갈만큼 갔지 않으냐고 한다.(ㅎㅎㅎ)
노래방, 가라오케, 노래 연습장, 노래 주점...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름, 이름만 많은 것이 아니라 건전한 여가 즐기기와 퇴폐적인 놀이 사이만큼이나 각종 법이나 규제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 실은 사진들은 인터넷 검색 결과들임)
한국인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검증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래 솜씨 또한 평균적으로 타 민족이나 국가에 비해 뛰어나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방이라는 업태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충성도는 굉장했다. 1주일에 한두 번 이상 노래방에 들락거리는 것이 일상사처럼 여겨진 때도 있었다.
콘도, 팬션 심지어 교외의 음식점까지 노래방 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영업에 지장을 받을 만큼 노래방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한국에는 스트레스를 노래방에서 푼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했다.
PC용 프로그램도 인기가 있었다. 노래방에서 못다푼 노래의 한을 집에서 푼다고? 하지만 이 어플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가끔 집을 방문하는 손님이 있으면 돌려보긴 했지만 노래방만큼의 음향이나 분위기를 낼 수 없었기에.
한 콘도의 브로셔에 소개된 노래방 시설 사진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동원한 종업원인 듯 모델들의 자세와 표정이 무미건조하다. 이런 분위기뿐이라면 노래방 갈 사람은 별로 없을 듯. 집에서의 노래방 어플도 이런 분위기를 자아냈을 터.
노래방 문화에 꽤 오랫동안 심취해 있었던 대한민국 사회가, 절대로 변하지 않을 듯한 문화가 어느 시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성세대들은 얌전히 노래만 부르다마는 노래방에 식상하기 시작했고 업태는 그러한 무미건조함(!)을 타파하기 위한 편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노래방 도우미가 등장했다.
노래방 도우미는 노래를 같이 불러주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차원에서 점차 좀더 밀초신경 자극적인, 쉽게 말해 퇴폐적인 면으로 변질되어가기 시작하였다.
'대륙의 노래방 도우미'란다. 이쯤되면 할 말을 잃게 된다.
구글에서 '노래방'이란 검색어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라. 우리 사회의 어둡고 부끄러운 면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도 노래방에 가서는 안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즐겨하는 회식문화에서 노래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 때가 있었다. 회식의 2차는 거의 노래방이었다. 노래방에 가면 인기 스타가 있었다. 얌전히 노래만 부르는 대다수를 이끌어가는 거의 개그맨이나 노래방 전속 사회자 급의 인물이 반드시 있어 이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형상이었다.
40대 중반 이하의 젊은 사람들은 매우 가정적이다. 직장이 상사보다도 집의 아내와 남편이 훨씬 더 중요하다. 물론 가정에 충실하면 팔불출이라고 말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팔불출밖에 되어 보이지 않겠지만 실상 그렇게 보는 그들도 내심으로는 아내의 눈치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분명 이율배반적이다.
10여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연말에 송년회를 한답시고 예식장 맨 위층의 큰 부페를 빌려서 동창회를 주최한 적이 있는데, 200명 정도 참석하리라고 예상했던 인원이 30여명 남짓밖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주최한 나로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참석하리라고 믿었던 후배들인데 그들이 보기 좋게 배신을 했던 것이다.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하여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들이라고 성토하는 걸로 끝났다.
이후 그 모임은 일부 나이 많이 동창들의 모임으로 축소되었다가 그마져도 유야무야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 현상의 사회 변화 특히 가정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고 받아들였다.
변화란 것은 이런 것이다. 노래방 간답시고 사흘이 멀다하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나 아내가 꾸리는 가정이 원만할 리가 있겠는가? 사흘이 아니라 연말과 같은 뜻있는 시기에 가족이 아닌 딴 사람들과 밥먹고 술먹고 집에 늦게 들어오면 그 또한 반가운 일은 아니리라. 가부장적 제도하에서는 용인이 될 수 있는 일일지 모르지만 맞벌이에. 아이들 하나 아니면 둘 있는 단촐한 집안에 한 사람이 빠지면 그 빈자리는 확실히 커보이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가정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부 나이든 고위급들은 자신들의 노래방 즐김 행태를 변경시켜가면서 끊임없이 후배들로 하여금 가정 불화 속에서 시달리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횡포 이상의 잔인하고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몇 년전부터 나는 어떤 이유로든 노래방 가는 것을 거의 무조건 반대하고 가지 않았다. 그것이 설사 친목을 목적으로 한 것이든 송별의 아쉬움을 달래는 자리든 피한다. 친목은 평소에 돈독히 하는 것이며, 아쉬움은 다시 자리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이라면 딴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들어섰다하면 1시간 이상(1시간 만에 노래방에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음)의 시간을 낭비해야 하고 억지 흥으로 놀아야 한다는 것도 고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거의 10년 가까이 노래방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너무 깊다. 노래방을 즐기는 자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가 소위 몸 버리고 돈 버리는 상처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피치못할 회식이라면 밥만 먹고 집으로 향하는 것이 상책 중 상책이다. 밥 먹는 자리에서도 술은 자연히 나누게 되므로 흥이 나지 않는다, 대화가 부족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오히려 노래방에 가면 흥은 일부들이 독차지하고 귀가 아플 정도의 노래 소리 때문에 대화는 원천 봉쇄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지위가 높아지면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런 만큼 정작 본인의 가슴도 넓어져야 한다. 그런데 노래방이라는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 사람들이 갇히다보면 그런 면을 좀처럼 발휘하기 힘들 뿐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경향을 띄게 된다. 이점은 직장의 우두머리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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