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의 불교 국가들을 몇 번에 걸쳐 방문하면서 그들의 삶과 그들에게서 받은 인간적 면모에 감동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상대적이지만 우리에 비해 일반적으로 그들은 아주 선하다. 남의 물건을 탐하는 일이 거의 없고, 남을 해치지 않는다. 인사를 하면 반갑게 받아준다.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가까이 다가가면 흔쾌히 맞이해주고 그들의 영역에 동참시켜준다.
그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 같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를 후세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 같다.
왜 이런 인상이 남았을까? 그것은 잘은 몰라도 그들의 종교인 불교 때문이 아닌가 한다.
라오스 비엔티안 빠뚜사이(2016.1 사진)
그들의 삶을 미얀마와 태국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들 국가의 아이들과 청년들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절에서 승려로 생활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들은 출가와 환속이 자유롭다. 특히 9~12세 남자 어린 아이의 경우 신뿌(미얀마에서 일컫는 말, 태국에서는 '부엇낙'이라고 함)라는 의식을 거쳐 사원에 들어가 1~6개월을 탁발을 하면서 수행을 하고 나오게 된다. 평생에 걸쳐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원하면 언제든지 사원에 들어가 수행을 할 수가 있다. 이 수행의 횟수가 많음을 자랑으로 삼기도 한다.
미얀마 '신뿌'의 경우 동네별로 비슷한 또래들이 한꺼번에 의식을 갖고 사원으로 들어가는 일이 벌어지는데 마치 축제를 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신뿌 의식
사진 출처 : 베낭 하나 둘러메고..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을 한 동자들은 악단들의 흥겨운 반주와 동네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부처님이 어린 왕자로서 소를 타고 출가를 하였던 모습을 재현하면서 사원으로 향하게 된다. 부모들은 사원에 바칠 꽃과 공양을 준비하고 행렬을 따른다. 사원에 가서는 스님에 의해 삭발하는 아들의 모습을 부모는 대견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삭발한 소년은 수련승으로서 지켜야할 10계 서약을 하고 1~6개월 동안 부모와 떨어져 사원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수행하고, 평생 삶의 덕목으로 마음 깊이 새기게 되는 것이다.
새벽 탁발을 통해 얻은 음식을 먹고 있는 승려들. 하루 오전 중 두 번의 식사. 오후는 물만 마시고 수행을 계속한다.
사진 출처 : 조선뉴스프레스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 불교와 다르지 않다. 기본 교리는 똑같다. 이승과 저승을 윤회한다는 내세관도 똑같고 그에 따른 업보 의식도 같다. 8정도(八正道)도 같다. 다만 그들은 내세관이나 가르침의 덕목을 실천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나 할까?
그런 까닭으로 태국에 가서 중국에서 하듯이 물건 값을 반 또는 그 이상으로 깎으려 들면 그들은 심한 인간적 모욕감을 줄 수도 있다. 그들은 물건 값을 받을 만큼만 부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국의 상점에서는 많아야 10% 이내에서 재미삼아 흥정을 해야지 그 이상이 되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세속의 더러운 먼지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택시 운전사(특히 툭툭이 운전사) 사람들은 여차하면 바가기를 씌우려고 덤빈다.
그들은 먹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먹을거리가 많아서 물욕이 별로 없다. 조금이라도 수입이 생기면 먼저 부처님 앞에 시주하고 나머지로 생활을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경제적 수입이 약해서 교육과 주거 환경 등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미얀마의 경우 거의 절반에 이를 정도다. 그렇다고 글자를 못읽을 정도로 지적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절에서나 불경을 통해서 기본적인 문자 해독 능력을 키우기 때문일 것이다.
1인당 GDP가 미얀마의 경우 2천달러, 태국은 1만 달러 정도다. 5배 정도의 경제력 차이가 있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미얀마 아이들은 아침부터 집안일이나 가계수입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반면 태국의 아이들은 학교 공부도 모자라서 과외교습까지 받을 정도로 향학열이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유명 수학 과외 업체가 태국까지 진출해 있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태국 치앙마이의 유명 사찰에 관광을 가서 잔디밭에서 쉬다가 깜박하고 가방을 두고 자리를 뜬 적이 있다. 30여분이 지나 가방을 놓고 온 것을 알고 부랴부랴 그 자리로 갔다. 깜짝 놀랄 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손가방은 눈에 잘 띄도록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있었고, 가지고 다니던 지도는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돌맹이를 얹어놓았던 것이다. 가방 속의 현금이나 여권 등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고.
이 경험을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아울러 그들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관련 포스팅 보기]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학교를 못가고 놀고 있는 아이에게 부탁해서 상수도 물을 좀 받아달라는 부탁들 했었는데 불행히도 그날은 우리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까지 물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때까지 수도꼭지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초코파이 한 개를 쥐어주면서 부탁을 한 일이었지만 초코파이를 주면서 약간의 장난기 어렸던 내 마음 씀씀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차를 빌려서 운전을 하곤 했는데 간선도로로 진입을 하거나 신호등 없는 도로에서 유턴을 위해서 깜박이를 넣고 있으면 약간 여유있게 달려오는 대부분의 직진 차량들이 끼어들 자리를 양보해주었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이 나를 안아주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보름을 그런 환경에서 운전하다가 귀국하자마자 겪었던 우리 나라 운전자들의 지독한 몰인정, 양보심없는 행위는 또 얼마나 이 땅에 사는 것 자체가 처참하고 인간에 대해 낙담하게 했던지...
태국의 경우 기업이나 상품의 광고에 불교식 선행을 강조하는 작품이 많다.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감동적이다. [관련 포스팅 보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 행복지수를 결정하는가 보다. 이들 나라에 비해 우리의 행복지수는 많이 떨어지니까. 경제적인 측면이 아닌 인간 본연의 값어치를 따진다면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값어치 떨어지는 행동들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지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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