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열흘 앞둔 9월 2일, 집안에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연거푸 서너 번 A/S를 받았던 냉장고가 또 작동을 멈춘 것이다.
16년 전 처남이 이 냉장고를 만드는 회사에 근무할 당시 처남 자신이 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그 때 당시로는 초절전에 최고의 성능을 가진 최신형 냉장고라면서 한 대 마련하라고 권유해 큰맘 먹고 구입했던 물건이다. 당시로서는 676리터짜리로 용량도 컸을 뿐 아니라 월 소비 전력이 62kw/h 밖에 안되는(?) 초절전 에너지 소비등급 1등급 짜리 냉장고였다.
16년간 사용했던 냉장고와 같은 모델(인터넷 사진)
8월 초순 쯤이었다. 얼음이 녹지 않고 얼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녹기 시작해서 물이 냉장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고장이 생겼다. 부품이 하나 고장이 났다면서 쇠막대기 같은 부품을 갈아넣었는데 그 과정에서 수리해준 기사 양반이 송풍팬의 전원을 연결시키지 않는 바람에 이틀 뒤에 다시 불렀다. 실수를 인정하고 정상 연결을 시킨 다음 다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거라고 했는데 이틀 쯤 뒤까지 냉장과 냉동 기능이 시원찮아 애를 태웠다. 다시 수리 기사를 불렀더니 냉장, 냉동 온도 설정이 잘못되었다면서 별다른 조치없이 가버렸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예전 같지 않은 냉장, 냉동 기능이 계속되어 예후가 별로 좋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터인데, 그런 상태로 한 달 남짓 버틴 셈이다.
냉장고 바닥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은 9월 2일부터였다. 약간의 맑은 물이 새어나와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실상은 집에 식구라고는 우리 부부 둘 뿐이라 여차하면 바깥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예가 많아 냉장고 문을 열어볼 일도 없이 이틀을 지났다. 퇴근을 해서 집에 오니 냄새가 심상찮아 근원을 찾다보니 바로 냉장고였다. 문을 열다가 기절할 뻔 했다. 이틀 동안 냉장고가 아니라 온장고가 되어 있었고, 음식들은 모두 부패한 상태.
냉장고 사용년수를 주제로 얘기를 꺼내보니 16년을 사용한 집은 주변에 별로 없었다. 본전은 뽑았고 오히려 초절전이었던 이 냉장고의 전기 사용량은 최근의 제품에 비하면 전기 먹는 하마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둘러 인터넷에서 800리터 급에 에너지 절약 1등급짜리 냉장고를 골라서 금요일 저녁에 주문을 했다. 그 날이 9월 2일이었다. 추석까지는 열흘 이상 날짜가 있어 추석 전에 충분히 받을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그 다음 주 화요일인 9월 6일에 냉장고 판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안심번호 때문에 배달에 애를 먹고 있다면서 실제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언제 배달해주냐고 물으니 1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9월 2일 주문했으니 9월 13일 이전에는 배달이 된다는 얘기인데 일단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주말에는 설치가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토요일, 일요일 아무 소식없이 지나갔다. 9월 13일 월요일에는 모종의 결판을 내야 하는 날이었다. 늦어도 저녁 아니 내일 아침까지는 새 냉장고가 들어와야 추석 차림을 할 수 있을 터, 냉장고 없이 추석을 쐰다는 것은 아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에게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업무 시작 시간에 맞춰 인터넷 판매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배송이 언제 되느냐고 물으니 추석 뒤라야 가능하단다. 냉장고 회사의 물유센터에 물량이 없다고 한다. 다급해졌다. 일단 주문을 취소했다.
이 상황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주문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A/S를 하는 제자에게 문자를 넣어 물건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예'라고 아주 짤막한 답이 왔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 구체적인 답변이 없다. 김해에 있는 대형 할인매장의 전자제품 코너에 전화를 했다. 모델 번호를 알려주면서 물건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모델은 자기들 매장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거라는 답변이 왔다.
가까운 가전회사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서도 원하는 모델은 있는데 추석 다음날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아주 신빙성 있는 정보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하는 얘기가 오늘 주문해서 오늘 설치되는 판매점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정말 다급해졌다. 에너저 절약 1등급이고 뭐고도 없다. 일단 어떤 물건이든 내일까지 배달되는 물건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수업이 2시간 연속 비는 틈을 타서 매장으로 달려갔다. 바텐더 기능이 있고 없고, 문짝이 2개고 4개고도 상관없다. 최종적으로 907리터짜리, 문 4개, 에너지 효율 3등급 짜리를 인터넷 가격보다 어림잡아 20만원 가량 비싸게 주고 샀다. 단지 내일 배달되는 다시 말해 물량이 확보된다는 이유로.
2016년 9월 14일 추석 전날, 마침 작은 아들이 집에 와있어서 설치 기사를 맞이하는 문제는 없는 상태. 언제든 배달 가능하도록 아들을 대기시켰다.
그런데 아들에게서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가 왔다. 거실로 통하는 중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거다. 언젠가 한번 반의 반쪽 짜리 그 문을 열려다 여려움을 겪었던 일이 기억났다. 그땐 어찌어찌 열었었는데 기사와 아들이 붙들고 20분 넘게 씨름을 했는데도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기사는 다른 곳의 배달을 이유로 집을 떠났다고 덧붙였다. 이게 무슨 변고람!
인터넷 사진을 가져와 편집
문수리점을 인터넷 지도로 찾았다. 다행히 검색이 되었다. 연락하고 무조건 집으로 가봐달라고 전화로 부탁했다. 다행히 문은 열렸다. 그런데 배달 기사가 다른 지역으로 가버렸으면 어떡하지? 아들 말로는 오늘 재방문은 힘들다고 하면서 떠났다는데... 원격지에서 전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니 갑갑하기 짝이 없다. 배달 기사 전화번호를 어렵게 알아내서 연락했더니 천만다행히도 집 주변에 머물고 있단다. 한두 시간 후에 설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구입한 새 냉장고
이로써 냉장고와 관련한 긴박했던 모든 일들이 해소되었다. 그리고 추석 상차림에도 문제가 없었다.
사실은 하나의 문제가 더 남아 있다. 냉장고의 바닥이 제대로 고정이 되어 있지 않아 문을 닫으면 냉장고 전체가 약간 흔들린다. 덩치 큰 이 녀석을 안전하게 앉힐 일이 남았다.
엊저녁(2016년 9월 19일)에 지난 번 있었던 역대 최강 경주 지진에 의한 여진이 있었다고 한다. 지하 휘트니스 센터에 있어서 느끼질 못했는데 다시 느꼈다면 트라우마가 심해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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