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아버지의 나무

리치샘 2017. 12. 14. 12:06

나무가 없는 풍경은 삭막하다.
풍경을 배경 삼아 또는 풍경 그 자체를 사진으로 담을 때면 으례히 나무를 화면에 넣는다.


내가 등굣길 5년을 내 차로 도와주었던 자매 기다리면서 옆에 두고 봤던 나무다.
꽃이 피고 지고, 무성했던 잎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보기도 했다.


<밀양시 삼문동 유한강변아파트 앞>


거대한 콘크리트 둥지인 아파트, 그 속에 몸을 누이는 사람들은 나무가 그립다.
모퉁이에 서 있는 은행 한 그루가 씨앗을 떨어뜨릴 때 사람들은 나무가 주는 작은 행복을 담는다. 


<밀양시 삼문동 유한강변아파트 앞>


초지가 조성되어 있는 광활한 늪지. 이 풍경을 심심찮게 해주는 것도 나무다.


<김해서 진영읍 설창리 화포천 습지>


길을 에워싸고 사람과 차를 지켜주는 이 질서정연한 가로수.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편안하다.


<창원시 의창구 동읍 죽동리의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


내가 10년을 근무했던 학교의 교정에 있는 은행나무, 이팝나무, 소나무.
정문 쪽에 있어 학교 건물에서 비교적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이 나무들이 더 큰 울을 만들어주어야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될 터인데 그저 관상용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밀성제일고등학교 교정>


내 고향 절에서 얻어온 단풍나무, 베란다에서 키우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듯했던 이 나무가 제법 잎을 무성하게 달게 되면서 우리 집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 식물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의 어귀를 지키고 있는 이 나무는 내 어릴 때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불쌍한 나무였다. 그러나 지금은 집안의 아버지같이 이 동네를 지키고 있다.


<밀양시 무안면 웅동리 들마 입구>


또 한 그루, 내 고향 동네를 지키는 나무다.
사진의 오른쪽 아래 모퉁이에 보이는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가 원래 이 동네를 지키는 수호신인 당산나무였다. 그러나 나무가 어느 해부터 노쇄한 기운을 보이더니 둥지 가운데가 썩어 비어지게 되었고,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그만 둥지를 더 태워버리는 사고가 생겼다. 이후 나무를 기력을 잃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안타까워 하신 나의 아버지가 앞산에 있는 어린 느티나무를 통째로 캐어서 고목 옆에 심었다. 아래 사진에 있는 나무가 바로 그 나무다.

평생을 몸을 밑천삼아 억척같이 일만 하시다가 생을 마감하신 나의 아버지, 동네의 힘든 일은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셨다. 이 나무도 그 결과물 중 하나인 셈이다. 
새의 둥지가 되어주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과 바람을 준다. 겨울 지나 새 잎이 나면서 희망을 주고, 단풍이 들어 황홀함을 준다. 그러나 나무는 말이 없다.
이 나무에서 나는 나의 아버지를 만난다.


<밀양시 무안면 웅동리 들마에서 곰골로 가는 길가>